2019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 서훈
연세대학교 세라믹학 석사
연세대학교 공과대학교 금속공학 학사
“가마 속의 불은 끝을 알 수 없으며,
그 자유로움 안에서 우주의 숭고함을 발견한다.”
‘화염의 연금술사’라는 평을 받고 있는 김시영은 검은 도자기인 흑자의 재현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김시영은 단순한 재현에만 머물지 않고 ‘불’이라는 자연력과 ‘흙 속의 광물질’이라는 물성(物性)의 결합에 의한 변화에 주목하며 35여 년 간의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김시영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불 때기’이며 작업의 핵심 요소는 ‘불’이다.
김시영은 1958년에 태어나,일본에서 서도가로 활동한 아버지를 통해 일본의 도자문화와 먹의 검은 색을 접하였다. 그는 용산공업고등학교에서 용광로 속 화염이 물질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 후 연세대학교 금속공학과와 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 세라믹학 석사 과정을 통해 불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게 된다. 작가는 대학 산악부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흙과 돌을 만났고,특히 알프스 산맥에서 광물질이 다량으로 함유된 전혀 새로운 암석을 발견하면서 이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일본의 국보인 송요변다완(宋窯變茶碗)과의 만남이 작가가 물질에 대한 탐구를 도자 작업으로 풀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고려시대 이후 명맥이 거의 사라진,우리나라의 전통 흑색과 적갈색을 띤 흑자를 재현하기 위해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하던 김시영은 1988년 전통 장작가마를 짓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1997년 잠실 롯데갤러리에서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고,거기서 이어진 정양모 전(前)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인연은 작업의 학문적,역사적인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작가는 우리나라 전통 흑자의 재현뿐 아니라 도자 작업의 계기를 마련해준 송요변다완의 재현을 성공하기에 이른다.
김시영의 흑자에서 불 때기란 단순한 자화(瓷化)의 목적에서 나아가 흙속에 숨어있던 다양한 광물질들을 깨우는 과정이다. 흑자 표면의 변화무쌍한 무늬와 색감을 ‘요변(窯變)’이라고 하는데,이것은 흙속의 성분과 불의 온도,그리고 온도에 따른 ‘불의 분위기’ - 적절한 시기의 맑고 탁함 - 를 조절함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전통 흑자의 재현에 집중했던 작업 초기 이후의 15년 동안 김시영은 요변이 생성되는 순간을 조절하고 불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에 매달렸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 선생은 김시영을 ‘수도자적으로 작업하는 도예가’라 칭했다. 본디 공학을 전공했던 김시영은 과학적인 태도로 작업에 임하였다. 불 조절이 용이하면서도 가마 안의 분위기가 변화무쌍한 등유가마를 이용하여 매일 1300도의 불길을 세심하게 수정하길 20여년,김시영은 3000여 번의 가마 작업 끝에 작가만의 독특한 색감과 질감의 요변을 탄생시켰다. 어둠속에 피어나는 잔잔한 변화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로움과 묵직함을 느끼게 해주며, 작가는 이를 다완과 항아리에 담아 2010년 세종문화회관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이렇듯 김시영은 1980년대 말-2010년대 초반까지 가마의 불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그만의 독창적인 ‘김시영 구조 색’을 실험한다. 구조색이란 표면의 미세한 구조의 차이와 빛이 만나 다양한 색감을 나타내는 공작새의 깃털과도 같은 색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도자에서의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물성 실험에 집중해오고 있다. 가평, 철원, 제주 등 등 한국 전역에서 흙을 수집하고 여러 지역의 흙 성분을 조합하여 실험을 진행한다. 그 결과, 흙 안에 잠재된 신비한 색과 형이 1500도에 달하는 가마 불의 극단적인 조건을 만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빅뱅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한다. 마치 우주가 폭발하는 빅뱅공간과도 같이 수많은 가능성들이 폭발해 작품으로 탄생된다.
김시영은 고려시대 명맥이 끊겼던 역사 속의 흑자재현을 시작으로 ‘김시영 구조색’을 발견하고 최상의 흑자 표현을 시도한다. 어느덧 그의 ‘흑자’는 색과 형을 너머 무한한 가능성의 가치로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