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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ISU

2024.05.22-08.09

김시영의 소우주

 

김나정

 

«김시영의 소우주»는 부단한 불의 실험을 통해 우리 땅의 흙을 무한한 공간감과 찬란한 빛을 담은 소우주로 변환하는 김시영의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흙과 불이 만나 탄생한 우주를 형상화했다는 의미에서 ‘플래닛(Planet)’으로 불리는 김시영의 작업은 무수한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계획된 작가의 의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마 속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우연이 결합하여 마치 빅뱅과 같은 폭발력을 응축한 듯한 소우주를 도자 안에 담아 두는 일이다. 이번 개인전은 ‘불의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최근의 대형 조형 작업을 중심으로 대표작인 ‘흑자 달항아리’와 ‘흑자 다완’, ‘흑유 도판’까지 아울러 전시하며 흙 외의 재료들까지도 다루는 파격적인 물성 실험 작업도 소개함으로써 37년간 흑자(黑磁)의 동시대적 해석과 변주에 몰두해 온 김시영의 작업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마치 여러 작은 행성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궤도를 달리고 있는 천체에 들어가듯 구성된 «김시영의 소우주»전을 통해 우리가 매일 밟는 땅속에 감춰졌던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우고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보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김시영은 재료 과학을 기반으로 불을 통한 물성의 변화라는 요변 현상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요변(窯變)’이란 도자기를 구울 때 불꽃의 성질 등 여러 요인으로 가마 속에서 변화가 생겨 예기치 않은 색깔이 나타나거나 모양이 변형되는 일을 말한다. 김시영은 맥이 끊겼던 ‘고려 흑자’와 ‘송요변 다완’을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요변 현상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흑자색을 찾아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흑자는 통일신라 말기에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도자기이다. 하지만 고려 흑자는 흑색이나 적갈색에 머무른 채 일상생활에서의 활용도가 적어 점차 맥이 끊기게 된다. 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희소성이 높은 흑자를 ‘천목(天目)’으로 부르며 가장 귀한 도자기 중 하나로 여겨 왔다. 김시영 작가는 화염의 예술인 흑자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빛깔과 형태를 찾아내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먼저, 김시영의 작업은 흑자에 적합한 흙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고려시대 가마터에 흩어져 있던 흑자 파편을 우연히 발견한 것을 계기로 도공이 되길 결심하고 적합한 흙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고 한다. 김시영은 가평, 홍천, 철원, 제주 등 다양한 지역의 흙을 채취하고 조합해 태토(胎土,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흙)와 유약으로 만들고 각각의 흙의 지질적 특성을 연구한다. 일례로, ‘서가 흑자’는 가평 잣나무숲 아래 부엽토를 활용하여 독창적인 색을 만든 작업으로 상서로울 ‘서(瑞)’와 가평의 ‘가(加)’를 결합한 이름을 붙였다. 지금도 그는 정제된 태토를 사용하기보다는 홍천 작업실 주변 지천의 다양한 성질의 흙을 활용하고 조합하는 재료 실험을 계속한다. 이는 김시영의 작업이 흙 속 다양한 광물질을 깨우는 과정이자 우리 땅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미지의 영역을 발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흙 속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광물질이 불로 연단되어 저마다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김시영의 작업 방식이다.

 

이렇게 조합된 흙과 유약은 다시 가마 속 온도와 불길의 세기 등 다양한 조건의 불의 실험을 거치게 된다. 흑자는 불의 미세한 변화에도 크기와 형태, 색상이 변형되는 폭이 커서 무척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시영 작가는 “끝을 알 수 없는 가마 속의 불”에서 “자유로움”과 “우주의 숭고함”을 발견한다.[1] 이틀에 한 번씩 1,320도에서 1,450도에 이르는 고온의 불을 정성껏 지피며 그는 “불의 분위기를 구사하는 방법은 하늘의 별자리처럼 다양하다”[2]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무쌍한 불을 변화, 변형, 변환의 통로로 사용한다. 그의 가마 안에서 고온의 담금질을 견뎌낸 흙은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물질로 재탄생한다. 김시영은 “우주의 시작인 빅뱅의 순간”이 지금도 그의 작은 가마 안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여기며[3]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의 힘에 맞서는 동시에 불이 가져다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

 

흙과 불이 만나 나타나는 첫 번째 요변 현상은 색의 변화이다. 특히, 흑자는 유약 속 수많은 광물질이 불의 분위기에 따라 마치 화염으로 그림을 그리듯 오묘한 색상과 무늬를 발현한다. 그래서 김시영의 흑자는 단순히 검은색이라기보다는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지는 깊고 검은 공간감 위에 살며시 떠오르는 찬란한 색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을 ‘구조색(構造色, structural coloration)’이라고 하는데 표면 물질(입자)들의 미세한 구조에 의해 빛의 반사와 간섭으로 만들어지는 색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공작의 깃털이나 나비의 날개에서 나타나는 빛깔처럼 구조색은 외부의 빛과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김시영은 자연에서 발견한 자신의 구조색을 두고 “고요하지만 역동의 에너지를 품은 한국”[4]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한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마치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꽃들과 같다”[5]라고 평하기도 했다. 밤하늘의 별빛이나 우주의 은하수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금빛, 은빛, 청록빛, 붉은빛, 분홍빛, 보라빛 등으로 번지는 김시영의 구조색은 광물에 감춰져 있던 신비로운 비밀을 드러내는 듯하다.

 

김시영 작가가 탐구하는 또 다른 요변 현상은 형태의 변형이다. 198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그는 가마의 불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자신만의 구조색을 만드는 데 전념했다면, 2010년대 중반부터는 도자라는 전통적 매체의 기존 문법과 체계를 넘어서는 물성 실험으로 한층 더 나아가고자 한다. 1,350도에 달하는 고온과 오랜 소성 시간 그리고 여러 차례 반복되는 김시영의 불 때기는 작품의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김시영 작가는 때로는 일그러지고 때로는 주저앉거나 녹아내리기까지 하는 가마 속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변형에서 오히려 크나큰 해방감과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달항아리 작업에서도 위아래 접붙이기로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방식 외에도 좌우 또는 사선 접붙이기를 통해 형태의 변형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이에 따라 김시영의 달항아리는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점점 더 무정형에 가까운 추상 조각으로 변형되어 간다. 또한, 물레성형 외에도 캐스팅과 직조 등 다양한 성형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실용적 용기의 형태에서 벗어난 조각적 작업을 이어 간다. 이러한 그의 형태 실험은 속을 비운 도자 조각뿐 아니라 속을 꽉 채운 흙덩어리 자체도 고온 소성하여 흙덩이 자체의 밀도에 따라 다양하게 발생하는 형의 요변을 실험하는 등 파격적인 작업으로도 나아간다.

 

2010년부터 김시영이 몰두해 온 달의 형상은 이번 전시에서도 흑자 달항아리뿐만 아니라 대형 조각 작업, 도판 작업 등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보통 달항아리 하면 조선백자를 떠올리지만, 김시영 작가는 수십억 년에 걸쳐 생성된 달의 거친 표면과 분화구 등의 실제 달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여기고 흑자와 달항아리를 결합한 작업을 시작했다. 김시영의 흑자는 고온의 소성 작업을 거치면 20%~30% 내외로 크기가 줄어들면서 뒤틀리고 변형되기 쉬워서 50센티미터를 넘는 대형 달항아리는 완성되기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그의 가마 속에서 고온과 고압을 견뎌낸 달항아리는 더욱 단단하게 둥그레지고 하단부로 흘러내린 두터운 유약의 독특한 색과 질감을 형성하면서 김시영의 작업 주제인 색과 형의 요변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품이 된다. 김시영의 흑자 달항아리는 “불확실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기대감”[6]을 형상화한 것으로 평온한 고요와 들끓는 변화가 동시에 공존한다. 이는 마치 작은 달이 거대한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의 순간처럼 “태양을 집어삼킨 듯한 단단한 에너지”[7]를 품은 압도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이러한 흑자 달항아리 작업을 김시영 작가는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요변 자연 추상 작품”[8]이라고 설명하며 전통적인 달항아리에 다양한 요변 실험을 접목함으로써 점점 더 조각적 작업으로 나아간다. ‘플래닛(Planet)’이라는 제목이 붙는 김시영의 작업은 전통적인 도자기의 형상을 한 ‘플래닛 트래디셔널(Planet Traditional)’과 추상 조각에 가까운 ‘플래닛 메타포(Planet Metaphor)’로 나뉜다. 달항아리로 대표되는 ‘플래닛 트래디셔널’이 넉넉한 만월처럼 친근하다면, ‘입 없는 도자기’로도 불리는 ‘플래닛 메타포’는 항아리 형상에 인간의 신체 이미지를 결합하거나 일그러진 형태나 거친 질감을 부각하는 등 다채롭게 변주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대형 신작인 ‘플래닛 메타포’를 중심으로 그 원형이 되는 ‘플래닛 트래디셔널’, 평면에 달항아리를 그린 흑유 도판,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기 위해 쓰이는 붕판 자체에 유약을 발라 화염으로 그림을 그리듯 물성 실험을 하는 작업 등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마치 여러 행성이 저마다의 궤도를 달리며 공명하는 ‘김시영의 소우주’에 들어온 듯한 구성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신작 ‘플래닛 메타포’는 불에 의해 이지러지는 형태나 거친 질감을 극대화한 ‘불의 조각’이다. 마치 달의 표면이나 거대한 암석을 닮은 작품들은 작가가 대학 시절 알프스산맥 등반 중 조난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매달렸던 거대한 암벽이나 금속을 황금으로 바꿔준다는 신비로운 연금술의 재료인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떠올리게 한다.

 

김시영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변화’이다. 흙과 불이 만나서 물질의 색과 형상, 속성이 변한다. 단순한 말이지만 무한하게 펼쳐지는 변화, 변형, 변환의 스펙트럼을 이루는 데에 그는 평생을 바쳐 왔다. 공학을 전공하고 연구원, 공장장으로 일했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김시영은 때로는 과학자처럼 때로는 연금술사처럼 물질이 불을 통과하며 변화되는 과정 그 자체에 이끌린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불확실했던 내재적 가치를 끌어올려” 드러내고 “익숙했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도록” 이끌기 위한 “끊임없는 변화”를 나타낸다고 말한다.[9] 몇 억 년 전 운석의 충돌로 생겨난 우주의 파편이라고 할 수 있는 흙이 다시 가마라는 작은 우주에 들어가서 서로 공명하며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이야기이다.[10] ‘국내 유일무이한 흑자 도공’, ‘고려 흑자를 계승한 도예가’, ‘불의 작가’, ‘화염의 마술사’ 등의 다양한 호칭처럼 김시영은 과학과 예술, 일상과 예술, 전통과 현대의 견고한 경계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기 작품만큼이나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는 삶을 살아왔다. 본래 도자가 우주의 근원적 요소인 흙과 물 그리고 불이 만나는 예술이라면, 김시영은 이러한 도자의 근간인 흙과 불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우리 삶의 순리를 사유하는 작업을 한다.

 

김시영의 소우주는 대형 조각이나 항아리뿐만 아니라 작은 찻잔 속에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한 손님들은 흑자 다완(茶碗)에 말차를 대접받게 된다. 제각각 독특한 검은빛을 띤 다완에 말차가 담기면 말차의 색을 반추하는 듯 녹빛이 감돌다가 차를 마시려고 찻잔을 기울이면 빛에 따라 형형색색의 일렁임이 번진다. 작은 찻잔 속에 깃든 광활한 우주처럼 김시영의 작업은 머나먼 우주에 대한 동경과 미시세계로의 경이로운 모험을 우리의 일상에 선사한다.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김시영의 소우주» 전시에서 크고 작은 항아리와 다완 안에 담긴 작은 우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지만 주목하지 못했던 지천의 흙 속에 감춰졌던 광물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발하며 들려주는 미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1] 김시영, 작가 노트, 2023.

[2] 김시영 아틀리에, 『Kim Syyoung』(김시영 아틀리에, 2019).

[3] 김시영 아틀리에, 앞의 도록.

[4] 김시영, 작가 노트, 「자유」, 2020.

[5] 정양모, 「가평요 흑유자에 바라는 마음」, 1997.

[6] 김시영, 작가 노트, 2023.

[7] 김시영 아틀리에, 앞의 도록.

[8] 김시영 아틀리에, 앞의 도록.

[9] 김시영, 작가 노트, 2023.

[10] 김시영 작가의 장작 가마 이름은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이다. 등유 가마는 ‘베가(Vega)’, ‘알데바란(Aldebaran)’, ‘베텔게우스(Betelgeuse)’로 모두 항성(恒星, Star)에서 이름을 따온 것들이다. 이 가마들에서 나온 작품의 이름은 ‘행성(Planet)’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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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MPLATION

Kim Syyoung, Park Seobo, Yun Hyoung-geun, Lee Bae, Chung Chang-sup, and Choi Myoung-young.

Shinsegae Gallery (boontheshop) x Liaigre Seoul 

2024.03.07-05.01

< CONTEMPLATION >

SHINSEGAE GALLERY 

 영적인 수행은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고, 주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결을 실행하는 과정입니다. 영적인 갈구와 근원적 진리를 향한 열망은 우리 모두의 삶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으나, 고단한 일상과의 괴리로 인해 종종 간과되곤 합니다. 신세계갤러리는 기획전 <묵상>을 통해 김시영, 박서보, 윤형근, 이배, 정창섭, 최명영 등 미술의 언어를 통해 수행하는 유수의 작가들의 미적 성취 중 일부를 발췌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의 시각적 경이를 향한 여정과 관객의 내면 세계가 조응하여 예술적 경험을 넘어선 내적 고요와 깨달음의 순간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정창섭(1927-2011)의 대형 평면회화가 제일 먼저 관객을 반깁니다. 일견 텅빈 캔버스로 보이는 정창섭의 화면은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정창섭은 그리지 않습니다. 다만 한지의 원료를 손으로 밀고 눌러 반죽과 신체가 빚어내는 행위 자체를 드러낼 뿐입니다. 물기를 머금은 닥 반죽과 손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신체적 교감을 통해 발현되는 섬세한 종이의 결은 극도로 절제된 색채와 더불어 단정한 사각의 형태로 빚어져 조용히 자신을 드러냅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정창섭은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벨기에(2020),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18), 페로탕-뉴욕(2015) 등에서 전시되었습니다. 정창섭의 작품은 국민훈장 목련장(1993) 등으로 예술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전시장 전체에서 <묵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단단한 끈인 김시영(1958-)의 도자 작품은 평면회화와 입체조형의 깊이 있는 조응을 보여줍니다. 전통 흑자 도자를 재현하는 것에서 탄생한 김시영의 작업은 불과 유약이 만나 변화하는 우연적 효과인 요변이 생성되는 순간을 다루며 점차 도자라는 장르를 초월해 흙의 물성 실험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전역에서 수집한 흙과 불의 환경인 가마를 조절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발전한 그의 작품 세계는, 제한된 장르 내에서의 부단한 연구를 통해 전형적 패러다임을 뛰어 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단색화와 같은 문법을 공유합니다. 문화역서울(2022), 학고재(2022), 서울공예미술관(2021) 등에서의 전시를 통해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인 바 있는 김시영은 2019 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화관을 수여 받았습니다.

 윤형근(1928-2007)은 면포나 마포의 표면에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과 땅의 색인 암갈색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찍어 내려 천지문을 형상화한 특유의 작품세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묵상>은 신비로운 번짐의 변주가 돋보이며 고목과 흙을 연상시키는 80 년대의 작품부터 도널드저드와의 만남 이후 보다 순수한 검정에 가까워지며 극단적인 미니멀한 조형을 추구한 90 년대까지의 작가의 여정을 담습니다. 특히 흑자의 다양한 요변을 실험한 김시영의 도자와 어우러져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검정의 깊이있는 변주를 보여줍니다. 윤형근은 데이비드 즈위너-파리(2023), PKM 갤러리(2021), 데이비드 즈위너_뉴욕(2020), 국립현대미술관(2018) 등 세계 유수 기관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통로를 지나 갤러리의 N 관으로 이동하면 한국 단색화의 세계화를 이끌었다고 일컬어지는 박서보(1931-2023)의 200 호 대작 ‘묘법’이 관객을 반깁니다. 박서보는 1950 년대 후반부터 단색화 작업을 시작하여 흙, 모래, 돌, 헝겊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점화’, ‘그리드’, ‘아크로마틱’ 등의 기법을 개발했으며 특유의 단순한 형태, 질감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습니다. ‘묘법’은 면도날, 칼 등으로 캔버스를 긁는 기법으로 반복적인 행위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기 성찰의 미학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박서보는 루이비통 메종(2022), 화이트큐부-런던(2021), 페로탕-파리(2019), 국립현대미술관(2019)등 대규모의 개인전 및 금환문화훈장 등을 통해 예술적 성취가 조명 받았습니다.

 무한한 반복이라는 행위의 심오함을 보여주는 최명영(1941-)의 작품은 회화 평면의 비조형성에 집중하며, 반복적 수행성을 통한 물질과 정신의 화학적 결합을 추구합니다. 50 여 년 동안 물잘의 부동성과 평면적 존재가치를 탐구하며 치열하게 사유해온 작가는 회화의 평면을 통해 삶의 매 순간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며 <묵상>은 이러한 작가의 여정에 잠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최명영은 아트조선스페이스(2023), 더페이지갤러리(2022), 페로탕 파리(2016)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전시로 주목 받았습니다.

 전시장의 통로 및 좌측에서는 작가 이배(1956-)가 숯과 밀랍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미디엄 Medium 연작이 김시영의 대형 달항아리 및 리에거 Liaigre 의 예술적인 가구와 배치되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나무로 태어나 자신의 몸을 태우고 땅으로 돌아가는 순환구조가 담긴 재료인 ‘숯’을 통해 구현된 이배의 검정색은 현실적 요소가 압축되고 축적된 포화상태를 표현합니다. “모든 것을 태운 숯에는 근원적인 힘이 스며 있다.”고 말하는 이배는 특유의 성찰적 모노크롬 회화를 통해 2000 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페로탕-파리(2022), 조현갤러리(2022), 기메미술관-파리(2015)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의 40 여회 개인전을 통해 그 성취를 국제적으로 선보였습니다.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불안정한 세계에서의 변치 않는 본질적 의미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며, 작품들은 예술적 행위의 결과를 넘어서 우리의 삶과 연결된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는 흔적입니다. 예술은 우리의 에고를 넘어선 근원적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하며, <묵상>은 예술과 수행이 만나는 깊은 지점에서의 핵심적 경험을 나누고자 애쓴 소박한 시도 입니다. <묵상>을 통해 세련된 미술이라는 경지를 넘어 우리가 스스로의 내면을 탐험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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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and fiery,
cold and shiny


kim syyoung, william lee

gallery meme
2024.03.27.-05.03.

<Two Masters of Black Ceramics and Silver Object>

Jeong Youngmok_Professor Emeritus, SNU

“The worship of beauty takes precedence, dangerously, over morality, facts, usefulness, sense, and, as far as possible, reality itself.”[1]

1. Master’s ‘Work’ (作業)

Both black ceramics and silver object are classified as craft. While such a classification has lost its meaning in this age and time, I believe that the labels of ‘ceramist’ and ‘metalsmith’ serve Kim Syyoung and William Lee, respectively, better than the generic term ‘artist’. For, the labels, I insist, not only show less influence from the Western modernism that calls everyone ‘artists’ but also reflect our tradition in craft that denotes a connotation of ‘artisan’ or ‘meister’.

 Craft is essentially a labor-intensive work that penetrates the essence of the material. “The worship of beauty”, quoted above, is merely what follows. Most of the terms related to craft or art come from borrowed words from Chinese or follow Japanese orthography based on Chinese letters. For example, let us take a look at the word 作業 which is directly connected to the idea of craftsmanship.

 If we are to directly translate the Chinese word 作業 into Korean, we could perhaps say ‘to make things’; there are, of course, deeper and wider connotations to the nuance of this word. The letter 業 might as well be translated to ‘life’ itself given its uses in Chinese language. And indeed, the most common association that Korean speakers have with the word 業 would be ‘work’. Here, ‘work’ signifies a sense of labor that employs both our body and our mind. A ‘labor of body and mind’, then, connects to our ‘occupation’ and the act of ‘making a living’. To act on ‘業’, therefore, marks the beginning of our ‘life’ and is inevitably connected to the notions of ‘origin, basis, or beginning’, of which societal implications bear resemblance to religion or ethics. As we see in examples of ‘業報’ (roughly, Karma) or ‘因果應報’ (roughly, a just punishment or recompense), ‘業’ constitutes a sense of the struggle between right and wrong, and good and bad.

 This etymological divergence is to emphasize how Kim Syyoung and William Lee take the actions and thoughts of craft as ‘work’ (and hence ‘labor’) before declaring any occupational or vocational connection to being ‘artists’. That is to say, these two masters assert their ‘occupation’ not through obtaining a degree, for example, but by committing to their ‘job’ and by ‘making a living’ for themselves and their families. Simplified, not only is the confidence of these two professional craftspeople imbued into the word of ‘作業’, but also the consciously chosen ‘vividness’ of both anguish and euphoria as craftspeople that equate ‘業報’ (karma) eventually become their ‘works’. While such properties of their artistic endeavor lead to the production of works that belong to a wholly artistic realm, it is a shame that ‘reality’, with its capitalistic irony, prioritizes ‘result’ over ‘process’ and hence values ‘marketability’ of the work. That is to say that the problem of aesthetic judgment and evaluation of the artistic commitment to their ‘works’ is not solely in the hands of the artists but at the mercy of the audience.

 

2. Kim Syyoung’s Black Ceramics

 

Recently, craft, too, pursues the abstract that we find in monochrome painting following its resurgence. More specifically, as the ‘moon jar’ located itself as the iconic aesthetic objet that represents South Korea, craft began to exhibit a tendency to represent the abstract in connection to its tradition. With such a tendency, craft was distanced from its inherent function and started pursuing concepts of painting and sculpture (what we consider to be the two mainstream genres of art), aesthetics, and decorativeness, eventually leading to the point where we are comfortable calling these two masters ‘artists’.

 It is my contention that craft’s function remains the same despite the change in the epoch, and that its everyday-life-ness must be discussed along with its beauty. In other words, one does not need a painting on a wall to be able to sustain one’s life, but a plate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one to sustain a human life. Some might dismiss my view on the basis that craft, too, is gratuitous for the sustenance of life, but the point that I am raising here is that craft’s inherent functions are increasingly blurred these days.

The aesthetic of ‘李朝’ white porcelain (李朝 is an archaic term for Joseon), made popular again by the recent resurgence of the monochrome painting, can be said to be the extension of our tradition that is unfortunately trapped within the Confucian ethics and its perceptive limits. The representation of the tradition should be a kind of representation that, transcending beyond mere mimesis, steps into the realm of ‘transformation’ that carries its zeitgeist. The criteria with which we assess craft’s functionality and beauty should, so I argue, pertain to that realm of ‘transformation’.

 Kim Syyoung’s black ceramics works, too, are not free from the aesthetic of monochrome painting, as they employ a black monochrome[2]. However, Kim Syyoung’s ceramics works aim at a transformation as a sculptural lump of volume and mass without paying respect to the functionality of a ‘jar’ while maintaining the black tone. How are we to make of this unique transformation? A postmodern zeitgeist? Or an aberration that defies the monotony of work process and form? Or a dangerous worship of beauty as Oscar Wilde explains? In any event, Kim Syyoung’s transformation is scintillating. It draws attention to not only her next project but also to the configuration of black monochrome.

 

3. Silver object by William Lee

 

The ingredient for the ‘moon jar’ is a ‘silver plate’. By forging a flat, literal silver plate, the metalsmith crafts a jar. The color and form of the jar resemble the moon, thus giving it its name.

Silver is white. This is why we sometimes call it ‘白銀’ (literally ‘white silver’). Silver is softer than other metals which makes it an excellent ingredient for forging. And because of its surface that reflects most of the light, it shines the brightest among metal. Such properties have put silver on a pedestal in both the East and the West. Its shiny surface, moreover, has associated silver with the Moon, thus recurring in symbols or myths related to it. The value of the material has been recognized from as early as ancient times when plates for religious rituals or upper-class cutlery preferred silver as its ‘fancy’ ingredient. Europeans, in particular the 16th-century England, have put so much value on well-crafted Silver Object that they are considered antique now. For William Lee whose critical acclaim began in England and not his native Korea, such history can be particularly meaningful.

Silver (銀) was more valuable than gold (金) at times. I believe that’s why we call banks ‘銀行’ and not ‘金行’. The etymology of the Chinese word for bank (銀行) comes from the time of the silver standard. There can be many ingredients to craft a ‘jar’. For example, even painting, photography, or videography can be used, in this age of abstract art, to create an image of a jar as efficiently as metal. However, as the symbol and value of silver suggest, one can argue that William Lee has taken the initiative on a pricey y

et valuable material to start his main game more luxuriously.

William Lee says to have been inspired by the natural, organic phenomena such as “flowing, melting, or freezing”. The manifestation of such inspiration resembles, both formally and stylistically, the representations of textures appearing on the surface of the ‘moon jar’. While it is evident that the metalsmith must have been immersed with both his body and mind during the restless hammering of the plate, the texture that appears on the surface is a product of accident that takes place in the random strikes with varying degrees of strength. However, it is the randomness and the abstraction of the part of the texture (and the entire surface that is a series of such textures) that makes the audience want to feel and touch the ‘jar’. In addition, our visual perception will associate the surface with the sentiment of ‘flowing’ that, in turn, creates a reproduction of one’s life that transcends spatiotemporal boundaries and leads our imagination.

In this sense, the appeal of ‘moon jar’ is twofold. One, the past-oriented sentiment that the mixture of ‘Moon’ and ‘jar’ creates, and two, the sentiment of contemporary art related to abstraction. It is my contention that such characteristics of the ‘moon jar’ will eventually converge and create discourses related to the formal and aesthetic discussion of the monochrome painting. This is also noticeable in the retro taste of the contemporary art scene that focuses on monochrome painting. At the same time, can we imagine William Lee without silver as his main material and main element for the ‘transformation’ as I discussed earlier?

I see the project of this exhibition as a convergence of two master craftspeople whose colors of ‘black and white’ are contrasted. While they might use different materials, the monochrome aesthetic that these materials emanate shows a dialectic harmony between them. The audience will surely feel the subtle yet certain attraction of the works that these two masters pronounce

 

[1] Wilde, Oscar. The Critic as Artist. New York: David Zwirner Books, 2019, p. 13.

[2] I am speaking of my argument from elsewhere that Black Painting by Robert Rauschenberg is not unrelated to the monochrome paintings of Japan and Korea. Kim Syyoung’s Black Ceramic works pertain to this argument.

흑자(黑磁) 와 은기 (銀器) 의 두 장인(匠人)
정영목_서울대 명예교수

“ 아름다움에의 흠모는 - 도덕 사실 유용성 감각 그리고 되도록 현실 그 자체로부터 멀리 - 위험할 정도로 이들보다 우선한다 ”1)

 

1. 장인의 작업( 作業)


흑자와 은기는 분류상 공예(工藝 )에 속한다. 이러한 분류가 요즈음 무의미하지만 그렇더라도 필자가 이야기하려 할 두 장인, 김시영은 도자공예가를 줄여 도예가로, 이상협은 금속을 다루기에 금속공예가지만 그냥 줄여 공예가로 호칭하는 것이 이들을 '작가'라 부르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장인적 유대감이 강한 공예의 전통이 반영된 - ‘artist(작가 )’ 라 통용되는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이 조금은 덜 묻어나오는 -  언어인 것 같기 때문이다.


공예는 기본적으로 재료에 천착(穿鑿)한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필자가 화두(話頭) 처럼 던진 "아름다움에의 흠모"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공예 또는 미술과 관련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대부분은 옛날부터 사용하던 한자어(漢字語) 이거나 아니면
한자어에 기반한 일본식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한 예로 공예의 장인정신과 직결되는, 흔히 쓰는 ‘작업(作業)’ 이란 언어를 살펴보자.


'작업' 이란 한자어의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무언가를 '만드는 일'쯤 되지만 이 말이 함축하는 뉘앙스의 범위는 한층 깊고 넓다. 업(業)이란 어찌 보면 그냥 우리의 '생활(life)'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선 업 이라 하면 '일'이란 언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것은 우리의 몸과 사고와 직결되는 '노동'을 뜻한다. "몸과 사고의 노동"은 곧 우리의 '직업'과 '생계'로 이어진다. '업'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곧 우리의 '생활' 일진대,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와 윤리 같은 무언가 '근원, 기초,시작'과 연루된 사회적 함축성을 띨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업보(業報)'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 의 뜻을 품고 있으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 곧 '업(業)'인 것이다.

이 말의 뜻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김시영과 이상협은 '작가' 이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공예의 행위와 사고를 '일' 즉 '노동'으로 받아들여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직업'을 표방하고, 그 직업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
이다. 즉 김시영과 이상협이라는 전업공예가로서의 '당당함'이 '작업'이라는 단순한 용어 속에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업보(
業報)'처럼 다가온, 주어진, 선택한 공예가로서의 고뇌와 환희의 '생생함' 이 곧 '작업' 인 셈이다. 이러한 작업의 속성이 생산해낸
결과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나, 사회의 현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앞세워 유통과 가치의 '상품성'에 치중하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안고 있다.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결과물이 가질법한 그 과정으로서의 진정성의 농도와 미학적인 평가는 작가를 떠나
관람자가 개입하는 또 다른 범주의 문제인 것이다.

 

 

2. 김시영의 흑자


근자(近者)에 이르러 단색화의 재유행과 함께 단색화류의 추상을 공예도 추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달항아리'가 한국인의 미감을 대표하는 '미적(美的)' 오브제로 부각(浮刻)하면서, 전통과 맞물린 추상성의 재현을 공예로 따라 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 경향과 함께 공예는 공예의 태생적인 기능(器能) 과 멀어지면서 흔히 우리가 미술의 주류라 일컫는 회화와 조각의 개념과 미학, 장식성을 덩달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라는 호칭으로 이들 두 장인을 편하게 부른다.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공예의 순기능이 우리 일상생활과 함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림은 벽에 안 걸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그릇은 당장 먹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충분조건의 기물이다. 필자보고 무식한 소리라 하겠지만 그만큼 공예의 태생적인 순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느낌이 안타까워 한마디 적었다.
 

단색화의 재유행이 불러온 ‘이조백자' 의 미감도 어찌 보면 유교적 도덕성의 시지각에 갇힌 우리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겠다. 전통의 재현은 복제(複製)를 넘어 그 시대 정신이 깃든 재현이되 '변형(transformation)' 의 무엇이어야 한다. 공예의 순기능과
아름다움의 척도는 바로 이 변형된 무엇에 깃든 무엇이라 하겠다.


김시영의 흑자도 단색화의 미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단색이기 때문에.2)  그런데 김시영은 검정색의 톤은 유지하면서 항아리 라는 순기능의 형태를 무시한, 그야말로 자유롭게 조각적 느낌이 강한 볼륨(volume)과 매스(mass)의 덩어리 개념으로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시대 정신?, 아니면 작업과 형식의 단조로움에 따른 일탈(逸脫)의 변형? 아니면 와일드(Oscar Wilde) 식의 '위험할 정도로" 추종하는 "아름다움에의 흠모?" 김시영의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그의 다음이, 차제에 검정색도...


3. 이상협의 은기
 

'달항아리'의 재료는 '은판(銀板)'이다. 말 그대로 은으로 된 널찍한 판을 두드려(단조鍛造) 항아리를 만들고 만든 항아리의 색(色) 과 형태가 달을 닮아 순수한 우리말로 '달항아리'라 불린다.
 

은 (銀 silver)은 하얗다. 해서 백은(白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은은 다른 금속에 비해 무르기 때문에 단조에 유리하다. 또한 표면에 들어오는 빛의 대부분을 반사해 금속 중에서 광택이 가장 강하다. 이러한 속성으로 말미암아 동서양은 고대로부터 은을 귀
중하게 취급했고, 그 은은한 빛깔 때문에 '달' 과 관련한 상징과 신화로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재질의 탁월한 가치는 고대로부터 통용되어 종교용의 제기(祭器)나 상류사회의 일상 용기를 제공하는 공예의 고급재료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16세기 이후 영국
을 비롯한 유럽인들 사이에 떠도는 은그릇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때문에 영국에서 먼저 작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한 이상협의 작품 저변에는 이러한 역사성이 깃들어 있다 하겠다.

 

은(銀)은 한때 금(金) 보다 더 대접을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돈(화폐)' 의 저장고인 은행(銀行)을 '금행(金行)' 이라 부르지 않나 보다. 은행(銀行) 이란 한자어의 어원은 중국이다. 한때은본위제 국가였던 중국의 영향으로 우리도 은을 화폐로 사용했듯이 은행
이라는 말은 은의 유통에서 비롯되었다. '항아리'를 만들 여러 재료가 있을 수 있겠으나 예를 , 들어 그림과 사진 또는 영상 등도 매체로서의 동등한 등가관계로 금속과 비견(比肩) 할지언정 은의 상징과 가치가 그러하듯 이상협은 노동과 조형 차원 이전에
매우 비싸고 좋은 재료를 점유함으로써 일단 한 수 접고 ‘메인(main)’ ‘게임(game)’ 에 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상협은 "flow, 흐름, 흘러내림, 얼어붙음, 녹아내림 등 자연의 유기적인 현상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한다. 이 영감의 발현은 조형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달항아리'라 불리는 은기의 표면에 나타나는 질감의 재현적인 표현과 매우 닮아있다. 물론
무수한 노동의 망치질 가운데 몸과 정신이 일치하는 무아의 몰입감도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그 질감은 타격의 힘(에너지)을 조절하는 가운데 우연히 생성되는 때로는 의식적으로 생성한 추상적인 질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인 질감의 부분과 전
체의 표피가 관람자에게 매우 매혹적으로 다가와 그 자체만으로도 만져보고 싶은 촉각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거기에 덧붙여 기억에 의한 우리의 시지각은 무언가를 연상해내어 마치 무언가 '흐르는' 듯한 정서와 맞닥뜨려 시공간을 초월한 각자
나름대로의 재현적인 일상으로 우리의 상상을 이끌어간다.

 

때문에 '달항아리'의 매력은 다음의 두 성격으로 집약된다. 첫 번째 '달'과 '항아리'의 결합이 불러일으키는 과거지향적인 정서와 두 번째는 '추상(성)과 관련한 현대미술의 정서로 풀이할 수 있겠다. 또한 이 둘의 성격은 결국 모여져 '단색화'와 관계되는 형
식적인, 미학적인 논의들과 맞물려있다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왜냐하면 최근 일고 있는 '단색화'에 대한 복고적 취향의 미술시장성 역시 이들 논의의 틀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변형의 관점에서 은(銀)을 떠난 이상협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번 전시의 기획을 '흑과 백'의 단색조에 맞춘 두 공예가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물론 재질은 달라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단색조의 미감은 서로를 떠받쳐주는 정반합의 어울림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관람자에게도 '나의 아저씨'같은 두 작가가 풍기는 은은하지만 듬직한 매력을 작품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Oscar Wilde, The Critic as Artist, New York: David Zwirner Books, 2029, p. 13: “theworship of beauty takes precedence, dangerously, over morality, facts, usefulness, sense, and, as far as possible, reality itself.”

2) 이것은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Black Painting>이 일본과 한국의 '단색화' 계열과 무관하지 않다는 필자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김시영의 흑자도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19) Planet MM_015-2.jpg

from black 玄

Kim Choong-Hyun, Kim Syyoung, Zain

Bohyunjae

2023

<A human who swims precessional(歲差游泳)>

Kim Syyoung's statement
2023.01.19.

Life is a series of uncertainties, and I live my life facing the given life without distracting thoughts. The attitude of my life, which I want to define as a "swimming life(歲差)" is actively incorporated in my recent work, human sculpture. In particular, this sculpture was named ‘A human who swims precessional(歲差游泳)’. ‘Precession(歲差)’ is a physical phenomenon in which the axis of a rotating object often changes. Earth's climate change is also a phenomenon that occurs because the earth is in precessional motion. ‘A human who swims precessional(歲差游泳)’ is a human with the potential to face certain changes with the whole body while swimming and moving forward. I think that the characters in movies and novels, such as Forrest Gump, the Greek Zorba, and Nietzsche's superhumans, are ‘A human who swims precessional(歲差游泳)’.

 

Until l made ‘A human who swims precessional(歲差游泳)’, I was fascinated by the sublime adventure of forming a variation of a fire full of variables by working on the moon jar and black ceramics. For the moon jars I have worked on for the past 20 years, subtle changes in the joint between the top and bottom change the overall shape. The formativeness created in this way is not the beauty measured rationally, but the beauty of uncertainty created by fire. My classmates who studied Fine ceramics together built a semiconductor business based on numerical value and sameness, but on the contrary, I led the uncertainty of fire in the kiln to the extreme by doing black ceramics art. The clay flower(窯變) of the new and mysterious black ceramics is expressed only when it meets unpredictable and
uncontrollable ultra-high temperatures.

 

Humans facing an uncertain life resemble the moon jars and black ceramics I made, especially the recent sculptures of humans. I turned the uncertainty of the kiln fire to the maximum to create ‘A human who swims precessional(歲差游泳)’. To this end, soil from various regions such as Gapyeong soil (where there used to be a high-quality gold mine), Cheorwon soil (border area with North Korea), and Jeju
Island (volcanic island) soil are used as materials. Since the soil in various regions has different iron content, specific inorganic ingredients, and melting points, these characteristics represent their material properties and forms in extreme conditions of fire-work. I combine soil from various regions to sculpt humans as simply as possible. The clod of soil, which was full of variables, becomes a human figure who overcame hardships by going through the fire of the kiln.

<세차유영을 하는 인간(歲差游泳)>

김시영 작가노트
 

2023.01.19

 


삶이란 불확실성의 연속이고, 나는 주어진 삶을 잡념 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유영(歲差)하는 삶’이라고 정의하고자 하는 나의 삶에 태도는 최근 작업인 인물조각에 적극적으로 녹아있다. 특히나 이 인물조각에는 ‘세차 유영을 하는 인간(歲差游泳)‘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차(歲差)’는 물리적 현상으로 회전하는 물체의 축이 종종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의 기후 변화도 지구가 세차 운동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차 유영을 하는 인간(歲差游泳)’은 물을 헤엄쳐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어떠한 변화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포텐셜을 가진 인간이다. 영화나 소설속의 인물들인 포레스트 검프나 희랍인 조르바, 니체의 초인이 이런 세차유영을 하는 인물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차유영을 하는 인간(歲差游泳)’을 만들기 전까지 나는 달항아리와 흑자를 작업하며 변수가 가득한 불을 변주하며 그 고귀한 모험에 매료되었다. 내가 지난 20년간 작업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은 상단과 하단의 접합부위의 미묘한 선의 변화가 전체의 형태를 재탄생시키는 것에 있다. 이렇게 생겨난 조형성은 이성적으로 재단된 아름다움이 아닌 불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의 아름다움이다. 파인세라믹을 함께 공부하던 학우들은 확실한 수치와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반도체사업을 일구었지만 나는 정반대로 흑자예술을 하며 가마의 불의 불확실성을 극단으로 이끌었다. 새롭고 신비로운 흑자의 요변(窯變)은 사람이 예측할 수 없고 컨트롤할 수 없는 초고온의 불안에서 세례를 받아야만 만날 수 있다.

 

불확실한 삶을 마주하는 인간은 내가 만든 달항아리, 흑자 특히나 최근의 인물 조각과 닮아있다. 나는 ‘세차유영하는 사람(歲差游泳)’을 만들기 위해 가마 불의 불확실성을 최대치로 끌
어올렸다. 이를 위해 가평의 흙(제일의 금광이 있던 곳), 철원의 흙(북한과의 접경지로 발달이 거의 안 된 곳), 제주도의(화산섬) 흙 등 다양한 지역의 흙을 재료로 사용한다. 다양한 지역의 흙들은 철분 함량, 특이 무기질 성분의 함유량, 융점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특징들이 극한의 조건인 불 길속에서 저마다의 물질성과 형상을 나타낸다. 나는 최대한 단순한 형태로 여러 지역의 흙을 이어 붙여 인체를 조각한다. 변수로 가득했던 흙덩어리는 가마의 불을 겪으며 고난을 이겨낸 인간의 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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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Y

Kim Syyoung

Hakgojae Artcenter 

2022

<DISCOVERY>

Kim Syyoung's statement

Recently, I became a grandfather to a baby girl. The newborn, yet to celebrate her first birthday, seems curious about whatever lies beyond but is reluctant to reach out or explore further. After much hesitation, focusing all senses on the tip of her fingers and toes, she finally takes a step, as if trying to overcome her fear and break out of her shell. Every day, my granddaughter explores the boundless realm of her existence and communicates with the world.

 

Just like her, I work with fire each and every day to discover unknown treasures. I enjoy firing at high temperatures. Ever since I stumbled upon some serene colors reminiscent of a Jewel beetle or a sunset while studying the clay flower, a phenomenon when the properties of the soil transform under fire inside a kiln, it has been a source of great pleasure. When the ordinary reddish-brown soil metamorphosed into an iridescent novelty, it was as if I had caught a glimpse of the secret map of fire, an uncharted territory for humans, and discovered a bejeweled treasure. After that initial encounter, I delved into the joys of firing every single day. It felt as if I had befriended nature, unknown and secretive, and earned the trust of fire, that opened its heart and flashed its brilliant colors one by one. Thereafter, I decided to coat the Moon Jar with these mysterious colors. Completed in fire at 1300-1350°C, my Moon Jars warp flexibly under gravity and high temperature. One day, I increased the temperature to 1500°C, hoping to stride into the unknown. When I opened the kiln, however, the Moon Jar had given in to the heat and had flopped down.

 

At that moment, a sensation of immense freedom came flooding in. Following this experience, my mind went to the astronauts who venture out into space. Space is a venue of chaos and creation, just like the kiln where the properties of matter transform under gravity. I had an urge to let go of skillful, meticulous wheel spinning and allow soil to meet fire in its natural form. My Moon Jar, after laying down its duties as a container, filled itself with energy-ridden soil and confronted fire. When I opened the kiln, I met a unique piece showered with the supernatural forces of fire, in form and shape that totally diverged from my intentions. These articles, capable of limitless metamorphosis, are named ‘Curiosity’.

 

In the middle of a silent, serene night, as I focused my whole spirit with the utmost devotion, I could feel the distortion of time and space. After what felt like a split second, dawn had already come. I believe that wormholes exist and that time and space is always connected in an infinite loop. Despite being objects from this Earth, these ‘Curiosity’ have a mysterious light to them, as if they came from a far away star, the future or the past. When I set my eyes on a ‘Curiosity’ inside a kiln, it feels like eternity, at the moment of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 DISCOVERY>

김시영 작업노트

얼마 전 손녀가 생겼다. 돌이 안 된 갓난쟁이는 저 너머가 궁금하지만 쉽사리 손을 뻗거나 저 영역으로 가지 않는다. 긴 망설임 뒤에 손끝, 발끝에 온 감각을 집중하며 한걸음 내딛는다.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알을 깨고자 하는 것 같다. 손녀는 매일 무궁무진한 자신을 탐험하고 세상과 대화한다.

 

내가 하는 불때기 역시 손녀의 오늘처럼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나는 고온의 불때기를 좋아한다. 가마 속 불로 인해 흙의 물성이 변화하는 현상인 요변현상을 탐구하던 중 비단벌레나 노을이 연상되는 영롱한 빛깔을 맞닥뜨린 경험 때문이다. 황토
색의 평범한 흙이 오색찬란한 새로움으로 변화된 것을 보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인 불의 비밀 지도를 내가 잠깐 엿보아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았다. 나는 그 후 하루가 멀다하고 불때기를 즐겼다. 미지의 영역인 자연과 조금은 친구가 된 것 같았고 불도 나에게 곁을 내주는 것 처럼 아름다운 빛깔들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그리곤 달항아리 라는 기물의 형태에 미지의 빛깔들을 덧입혔다. 1300~1350도의 매우 높은 온도의 불길 속에서 완성된 나의 달항아리는 고온 속에서 중력을 받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가마의 온도를 1500도까지 올리게 되었다.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윽고 가마문을 열어보니 고온을 견디지 못해 주저앉은 달항아리가 보였고, 그 때 나는 광활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이 작업을 계기로 우주로 여행을 떠난 지구인을 상상하게 되었다. 물성이 변화하는 가마 속은 인력과 중력이 뒤엉킨 혼돈의 공간이자 탄생의 공간, 우주이기 때문이다. 숙련 된 물레질을 버리고, 불과 흙을 그자체로 만나게 하고 싶었다. 나의 달항아리는 입을 닫고 뱃속엔 에너지를 가득 안은 흙을 품어 불과 마주했다. 가마를 열고, 내가 의도했지만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형과 색, 초자연적 힘인 불의 세례에서 나온 자유로운 작품을 만났다. 무궁무진한 변화가 가능한 기물, 이 작품을 궁금이라 부르자.

 

늦은 밤 고요한 가운데 온 정신을 모아 간절하게 정성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때 시공간의 뒤틀림을 느낀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던 것 같지만 이내 새벽이 와있다. 웜홀이 진정 존재해서 시간도 공간도 끊임없이 돌고 돌며 어디든 닿아 있다고 믿는다. 이
궁금이들은 마치 지구에 현재 존재하면서도 다른 별, 미래나 과거에서 온 것 같은 신비로움이 있다. 궁금이를 가마에서 발견하는 순간에 나는 영원을 느끼며 먼지에서 시작한 우주의 발생의 순간에 와있는 것 같다.

 

<Burning Love Loving Fire>
Invitation to Syyoung Kim’s space travel
Park, Rin-sik _Novelist

Just as the language of love does not reach love, the language of art does not reach Syyoung Kim’s work.

With his cosmic imagination of fire, earth, and wind and fire, his work reveals the inner universe of all life,
of which no linguistic human being has ever spoken.

Standing in front of his work, one suddenly realises that he or she is standing at the centre of the universe.

 

The farthest and widest world outside me enters me and overlaps with the nearest and deepest world.

 

(If I were the Buddha, I would have shouted again, ‘In the whole universe, only I exist
(天上天下唯我獨尊)’, at this moment).

When the heart of fire melts down the ‘time and narrative’ of the earth and black oil mineral particles into
the Big Bang’s ‘time and memory’, time that flows parallel to the space of light reaches the ultimate cosmic
colour and predicts the future.


At the point where a parallel movement of space and time takes place, his aesthetic is illuminated by a
religious aura that saves forgiveness, love, and mercy.

In the light of the Buddhist topic ‒ ‘Form is emptiness, and the very emptiness is form (色 卽是空空卽是色)’ ‒ his aesthetic contemplation is ‘Form is light, and light is form (色卽 是光 光卽是色)’.

 

In other words, in his work,

 

colour becomes light, and light becomes colour.

 

Time becomes space, and space becomes time.
(A long period of time soon becomes the space of a grain of dust, and the cosmic infinite space becomes the
imagination of a star’s blink of an eye).

 

I will soon be you, and you will soon become me. Thus, you and I will soon become us.

Accordingly, you, here, become the universe, that is, the art of God’s imagination.

 

If the artist chose the love of fire and earth from the cosmic tree, the cosmic tree, and fire and earth, chose
the cosmic beauty by choosing the artist. The mechanism of the aesthetics is cosmically wide, deep, and
high; cosmically narrow, shallow, and low.

 

The ultimate contradiction is that, after being blown away by the fire and wind of the universe he chose, and
being forever far away from the opposite pole, his kiln is reunited with each other, back-to-back, in another
hot universe and becomes immortal.

 

At this time, everything in the universe, connected like a mesh, rotates while interacting with each other. The
epic of space travel unfolds, in which one observes the mystery of the universe’s circular order, taking turns,
forming relationships.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ky. According to the prophets of Dunn, in the universe, what was yesterday
will be today, and what is today will be tomorrow. (Even in evolutionary theory, phylogeny repeats
ontogenesis).

 

Can’t we escape from Friedrich Nietzsche's fate of this eternal recurrence, repeated forever?

 

If only I could escape from that fate,
I would like to call the wisdom or skill by which I can escape the art.

 

This is because true art should be able to differently see and feel and speak about the narrative and time of all
things before meeting with the art. The novelty discovered through this difference creates another novelty.

 

In this way, he asserts that the artist takes precedence over art. The existence of the artist discovers the
existence of art that has been existing in the universe (since the beginning of time) and creates a new one.
(Without artists, there would be no art.)

Just as there is love beyond the language of love, there is more to art than the language of art.

 

As the artist discovered art beyond the language of art with the imagination of the cosmic memory of fire and
earth, he created a new art of the colours of the sky and the Earth (天地 玄黃), an unprecedented pottery
aesthetics (陶藝美學).

Why did he choose the colour black for the jar?

There is no black in white, but there is white in black. In his work, white with black coexists with black, and
thus light can be sent back to where it came from while embracing it.

All gwanghwa (光化) comes from black. The loneliness of the black body burns and becomes a white soul.
Like sunspots, the starting point of light and colour is not white, but black. It is not the black that light drives
out of darkness. Black is the ultimate emotional state (that is, love) that fully embraces the light inside and
returns it to the outside.

His black is a black-but-white work in which each life has its unique colour.

This black makes you close your eyes and illuminates the universe outside. White makes you open your eyes
and envelops the universe within you.
In addition, it takes you from black to white and makes you experience the cosmic mystery of returning to
black.
Here, black becomes a metaphor for space/body/‘my’ self, and white becomes a metaphor for
time/soul/‘your’ self.
The brightness of infinity, where the space of my body becomes one with the time of your soul, is black, and
the darkness of infinity is white.

The contradictory binary opposition and reconciliation of black and white makes one imagine the ultimate
religious question.
The black outside the white becomes the dust inside the white, and the white inside the black becomes the
cosmic void outside the black.

Seeing his work, I could see the universe, and myself in the universe, anew. I discovered a new universe
inside of me. I changed, as my worldview changed in this way. I found myself anew.

 

At that moment, a new ‘myself’ was created.

 

Syyoung Kim is an artist who discovers and makes one discover.

 

So will be the luck of all of you who encounter his work.

 

Here, we will become a new ‘us’ once again, and meet again soon.

 

A ‘soon’ that will last forever.

 

At an immortal place.

<우리는 여기서 다시 만나리, 곧>
김시영의 우주여행에 초대하며
박인식_소설가

사랑이라는 언어가 사랑에 미치지 못하듯, 예술이라는 언어는 김시영의 작품에 미치지 못한다.

 

그의 작품은 불과 흙과 불바람의 우주적 상상력으로 언어적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모든 목숨 내면의 우주까지 발견케 한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문득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깨우친다.

 

내 바깥으로 가장 멀리 가장 넓은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와 가장 가까이 가장 깊은 세계와 한 겹으로 겹쳐진다.

 

(부처라면 이 순간 “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을 다시 외쳤을 것이다)

 

불의 심장이,
흙과 흑유 광물 입자의 ‘시간과 서사’를
빅뱅의 ‘시간과 기억’으로 되돌려 녹이면, 빛의 공간과 나란히 흐른 시간은 궁극의 우주 빛깔에 닿아 미래를 예언한다.

 

공간과 시간의 평행이동이 일어난 이 지점에서 그의 미학은 용서와 사랑과 자비를 구원하는 종교적 아우라에 조명된다.

 

불가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화두에 비춰보자면,
그의 미학적 사색은 “색즉시광 광즉시색 色卽是光 光卽是色"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에서,

 

색은 곧 빛이 되고
빛은 곧 색이 된다.

 

시간은 곧 공간이 되고
공간은 곧 시간이 된다.
(오랜 시간은 곧 티끌 한 알의 공간이 되고, 우주적 무한의 공간은 곧 별 눈동자 깜박하는 찰나의 상상력이
되어)

 

나는 곧 네가 되고
너는 곧 내가 되어
너와 나는 곧 우리들이 된다.

 

그리하여
당신은 여기서, 우주

신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예술이 된다.

 

작가가 우주나무에서 온 불과 흙의 사랑을 선택했다면, 우주나무와 불과 흙은 작가를 선택함으로써 우주적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그 미학의 매커니즘은 우주적으로 넓고 깊고 높아,
우주적으로 좁고 얕고 낮다.
그 궁극적 모순은 그가 선택한 우주 불바람에 휘몰아쳐 반댓쪽 상극으로 영원히 멀어진 끝에,
그의 가마라는 또 하나의 뜨거운 우주 안에서,
서로 등을 맞대 재회하며 불멸이 된다.

 

이때,
그물망처럼 연결된 우주만물이 서로서로 관계하면서 돌아가고,
돌아가면서 관계맺는 우주 순환질서의 신비가 눈에 밟히는 우주여행의 서사가 펼쳐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던 선지자들의 선지식대로 우주에는,
어제 있었던 것이 오늘 있고 오늘 있는 것이 내일 있겠다.
(진화론에서도 계통발생은 개체발생을 반복한다니까)

 

영원히 되풀이 되는 이 영원회귀의 프리드리히 니체적 숙명에서 벗어날수는 없을까?

 

그 숙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벗어날 수 있는 지혜 또는 기술을 나는 예술이라 부르고자 한다.

 

진정한 예술은 모든 사물의 서사와 시간을 그 예술과 만나기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느껴 다르게

말할 수 있게 해야 하므로.
그 다름으로 발견하는 새로움이 또 다른 새로움을 창조하게 되므로.

 

이렇게 그는 예술보다 예술가가 우선임을 알게 한다.
그 같은 예술가의 존재가 우주 속에 이미 (태초 이래로) 존재하던 예술의 존재를 발견해내 새롭게
창조해내므로.
(예술가가 없다면 예술도 없어지는 것이다)

 

사랑에는 사랑이라는 언어 이상의 사랑이 있듯,
예술에는 예술이라는 언어 이상의 예술이 있다.

작가는 불과 흙의 우주적 기억력의 상상으로 예술이라는 언어를 넘어선 예술을 발견함으로써,
누구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천지현황天地玄黃 도예미학陶藝美學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냈다.

 

그는 왜 흑유의 검은색을 선택했을까?

 

흰색에는 검은색이 없지만,
검은색에는 흰색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검은색이 있는 흰색은 검은색과 함께 있음으로 빛을 품으면서 빛이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게 된다.

 

모든 광화光化는 검정에서 비롯한다. 검은 몸의 고독이 불 타올라 하얀빛의 영혼이 된다.
태양의 흑점처럼 빛과 색의 출발점은 하양이 아니라 검정인 것이다.
빛이 어둠을 내몰아 태어나는 검정이 아니라 빛을 내면으로 온전히 품어내면서 외면으로 온전히 되돌려
보내는 궁극적 감정상태(바로 사랑)가 검정이다.

 

그의 검정은 모든 목숨이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빛깔을 내는 검으나 흰 작품이라 말한다.

 

이 검정은,
당신의 눈을 감게 하여,
당신 바깥의 우주를 밝혀주고,
하양(흰)은, 당신 눈을 뜨게 하여
당신 안의 우주를 감싼다.
아울러 모든 당신을 검정에서 나와 하양으로 나아가게하며 검정으로 되돌아가는 우주신비를 체험케
만든다.
여기서 검정은 공간/몸/나의 메타포가 되고,
하양은 시간/영혼/너의 메타포가 된다.
내 몸의 공간이 네 영혼의 시간과 한몸되는 무한대의 밝음이 검정이고

무한소의 어둠이 하양이다, 말해준다.

 

검정과 하양의 모순적 이항대립과 화해는
끝내,
종교적인 궁극의 질문을 상상하게 만든다.
흰색 바깥 검은 색은 곧 흰색 안의 티끌이 되고,
검은색 안의 흰색은 곧 검은 색 바깥의 우주 허공이 되어.

 

나는 그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우주를 그리고 우주 속의 나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내 안의 우주를 새로이 발견했다.
내 세계관이 그렇게 바뀌면서 내가 바뀌었다.
바뀐 내가 나를 새롭게 발견해냈다.

 

그 순간,
새로운 내가 창조되었다.

 

김시영은 발견하는 예술가인 동시에 발견하게 만드는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과 마주한 그 모든 당신들의 행운도 그러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로워진 우리가 되어
다시 만나리라.

 

영원한,
‘곧’으로

 

불멸의,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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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TO THE BORDER
CARPENTER AND POTTER

Kim Syyoung, Jeongsup Lee

Shinsegae Gallery  

2018

<Once Again, the Spirit of Craftsmanship>

Shin, Kim_Art Critic

 

 

Talking about the spirit of craftsmanship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 herald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might seem anachronistic. The advancing frontier of technology increasingly renders the capabilities of human hands obsolete. In a world where pressing buttons and swiping surfaces suffice to convey instructions, even the modest dexterity of fingers seems unnecessary. Adapting to a world of incessant change, fueled by the accumulation of diverse credentials and imbued with a cold competitiveness, has become the zeitgeist of our era. In such times, discussing the spirit of craftsmanship and enjoying the objects crafted with that spirit begs the question:
what does it signify? From the exhibition of two craftsmen, Kim Syyoung and Lee Jeongsup, we are prompted to ponder precisely this.

 

 

The term "black glaze," signifying a glaze of dark color, is so unfamiliar to us that it has been largely neglected in our ceramic history. Throughout the proud history of Korean ceramics, the celebrated entities have always been Goryeo's celadon, Joseon's white porcelain, and buncheong ware. Black glaze ceramics, fired at higher temperatures than celadon or white porcelain due to the presence of iron in the glaze, presents technical challenges of its own. Flourishing during the Goryeo era, which pursued diversity in vessels, it waned during the restrained aesthetics of the Joseon period, and further declined in the 20th century. Kim Syyoung, originally majoring in metallurgical
engineering in university, stumbled into pottery after discovering black glaze by chance. "Cheonchak," meaning to pierce a hole, also denotes delving into a cause or content for investigation. To pierce is to plunge into that world, stacking stones with the world itself, immersing completely, which aptly describes Kim Syyoung's immersion in black glaze. In 1988, he established a studio named "Gapyeongyo" in Hongcheon, Gangwon Province, and has been wrestling with clay, fire, and glaze for 30 years since. Craftsmen are often ensnared by the desire to control materials, a pursuit that has consumed his lifetime. To revive the world of black glaze, one must expend far more effort than firing celadon or white porcelain, which still retain traditions. After thousands of firings done through
self-study, he reached a point of controlling the materials. Particularly intriguing to him was the light of his work. In his quest to create beautiful light, he traveled across the country to personally find clay. Thus, Kim Syyoung's black glaze is not simply black; could it resemble the treasures of Persia? Kim Syyoung's black glaze is characterized by subtle changes in color that decorate the surface in an indescribable way. It is more akin to light than color. Much like medieval Christian paintings expressed light through color, Kim Syyoung creates light. How does one create such light? Kim Syyoung adeptly controls the mysterious light and patterns of black glaze according to changes in kiln temperature, the position of vessels in the kiln, and the direction of the wind.

 

 

However, if there were complete control, people would sense rigidity in the vessels. The charm of Kim Syyoung's black glaze lies in the "relaxed" essence inherent in Korean aesthetics. While appropriately exercising control, Kim Syyoung also allows the clay and glaze to autonomously generate light under the influence of fire. Hence, there is comfort in the coexistence of "control" and "letting it be." Kim Syyoung's lifelong pursuit has been the light of black glaze. He has reached an unparalleled realm in understanding the light of black clay. Recently, his focus seems to have shifted to form. Yet, even in form, he demonstrates his distinctive spirit of imperfection, or rather, letting things be. In this exhibition, Kim Syyoung's artworks are not perfect symmetrical forms. Some are severely distorted, and some do not look artificial due to rough textures. The remarkable aspect lies in the fact that his endeavors, akin to the spontaneous formation of nature, actually stem from the artist's perfect mastery of the materials.
 

 

While Kim Syyoung's black glaze announces its presence with mysterious light, the furniture of Lee Jeongsup exhibits a strong presence in a different way. Initially, Lee Jeongsup's furniture may give the impression of being rigid and austere. Especially, the tables have thick table tops and legs. These thick materials meet and exten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to form sturdy and rigid structures.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modernism flourished, and furniture worldwide raced towards what is known as "sleekness." The emergence of strong, lightweight, and easily malleable materials such as steel pipes, plywood, and plastic allowed for thinner tabletops, thinner legs, and
elegant curves, resulting in aesthetically sleek furniture designs that seemed to float in the air, pleasing people's eyes. Lee Jeongsup approaches furniture entirely differently. This stems from his career as a master carpenter.

 

 

Although he majored in painting in college, he did not know why he should continue with that work. As is often the case with many things, he happened to become deeply involved in carpentry. Through building houses, he realized the importance of stable structures and honest utility. The furniture he initially created applied the ‘Dovetail joint’ technique commonly seen in Korean house construction. ‘Dovetail joint’ is a method of joining columns and beams without using a single nail or other auxiliary materials, enabling sturdy house construction without unnecessary additional materials. Applying this structure learned from his experience as a master carpenter to furniture, his furniture is a simple form devoid of any clutter, much like leaving only the framework of a hanok. It is incredibly sturdy and stable, enabling the elongation of tabletops to achieve beautiful proportions. Such stable proportions offset the impression of thick table tops.
 

 

However, for Lee Jeongsup, there is something more significant than the beauty of proportion. Just as a house should not stand out incongruously from nature but rather exist within it as the most quintessential representation of a dwelling, furniture, too, should embody the essence of being furniture within the home. Questions such as how thick should it be to exude more refinement, or how much longer should the tabletop extend from the legs to create tension, are profoundly design-oriented. It is an endeavor to approach a certain aesthetic ideal. Such a pursuit of beautiful formalism has led to innovations in structure and materials, advancing progress. Innovation seems to have reached a point where one might wonder if any further new designs are possible, yet the imperative of innovation and novelty persists and strengthens. Consequently, furniture that asserts its presence alone comes into being.
 

 

Despite these trends, Lee Jeongsup seeks a method where furniture naturally acquires its form from its own essence, or content, rather than being dictated by current fashions. Perhaps, what he refers to as the "vitality" of furniture lies precisely in that. Sturdy furniture that continues to serve its purpose for decades, regardless of trends. The form of such furniture is the inevitable result of the essence he seeks. If figures like Charles Eames and Arne Jacobsen in the West designed furniture rich in individual consciousness, Lee Jeongsup aims not for individuality but rather universality. It is an attempt to approach the essence of universal furniture that anyone, not just experts, can feel.
 

 

Both Kim Syyoung and Lee Jeongsup immerse themselves in their work in the secluded mountains of Hongcheon, Gangwon Province. It is regrettable that one can only encounter and appreciate the craftsmanship of such artisans deep within the deep mountain valley. In a world that increasingly emphasizes technological advancement, their process of laboring and striving against materials to reach the ultimate path of craftsmanship is exceedingly valuable. In this regard, their craftsmanship is not outdated, but rather, it represents a long-lost future that we ought to rediscover.

<다시 한번 장인 정신>
김신_미술평론가

4 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인공지능 시대에 장인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지 모르겠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기술은 사람 손이 가진 능력을 무력화한다. 버튼을 누르고 표면을 문지르는, 그나마 남아 있는 알량한 손가락 재주조차 필요 없다는 듯 말로 모든 것을 지시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다양한 스펙 쌓기와 냉정한 경쟁심으로 무장한 채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 임기웅변으로 적응하는 것이 삶의 지향이 된 시대다. 이런 시대에 장인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장인정신으로 만든
물건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도공 김시영과 목수 이정섭, 두 공예가의 전시로부터 우리가 질문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흑색 유약을 뜻하는 '흑유黑釉'란 단어 자체가 우리에게 낯설 정도로 이것은 우리의 도자 역사에서도 홀대를 받아왔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도자기 역사에서 늘 칭송되는 것은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 그리고 분청사기다. 흑유 자기는 철이 함유된 유약을 발라 청자나 백자보다 더 높은 온도로 구워내는 만큼 기술적으로도 고난이도에 속한다. 혹자는 그릇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고려시대에 성행했다가 절제와 검박을 중시하는 조선시대에 쇠퇴했고 20 세기에는 더욱 쇠잔해졌다. 김시영은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다 우연히 발견한 흑자에 빠져 도자기 작가가 되었다. '천착穿鑿'은 구멍을 뚫다는 뜻이며, 어떤 원인이나 내용을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천착한다는 건 한 마디로 그 세계에 홈뻑 빠져 세상과도 담을 쌓고 온전히 몰입하는 것을 뜻하는데, 흑자에 빠진 김시영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1988 년, 강원도 홍천에 ‘가평요'라는 작업장을 만들어 그때부터 흙과 불, 유약과 씨름하기를 30 년째 이어가고 있다. 공예가는 재료를 통제하려는 욕망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그가 평생을 연구한 것도 이것이다. 단절된 흑자의 세계를 되살리려면 전통이 아직 살아 있는 청자나 백자를 굽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독학으로 수천 번의 가마 작업 끝에 그는 재료를 통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그가 궁금해했던 것은 자기의 빛이다.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내고자 그는 전국을 돌며 직접 흙을 찾기도 한다. 그리하여 김시영의 혹자는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다. 페르시아의 보물이 그렇게 생겼을까? 김시영의 흑자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색의 변화가 표면을 장식한다. 그것은 색이라기보다는 빛이다. 중세의 기독교 회화가 색으로 빛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김시영은 빛을 창조한다. 어떻게 이런 빛을 빚어낼 수 있을까? 김시영은 가마 온도의 변화, 가마 속 그릇의 위치, 바람의 방향 등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흑자의 그 기묘한 빛과 무늬의 기운을 통제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통제만이 있다면, 그릇에서 사람들은 경직됨을 느낄 것이다. 김 시영 흑자의 묘미는 한국 미학의 특징인 '저절로'의 여유 또한 함께 한다는 것이다. 김시영은 적절하게 통제하면서도 흙과 유약이 불의 힘을 받아 자율적으로 만들어내는 빛을 내버려두기도 하는 것이다. 즉 ‘통제 control’와 '맡김 let itbe'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김시영이 그동안 천착해온 것은 흑자의 빛이었다. 검은 자기의 빛에 관한한 그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최근 그의 관심은 형태로 옮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형태에서도 그는 비완벽성, 즉 적절하게 내버려두고 내맡기는 그 특유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김시영의 자기는 좌우대칭의 완벽한 형태가 아니다. 어떤 것은 심하게 찌그려 있다. 어떤 것은 거친 질감으로 인해 인공물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미묘한 자기의 빛처럼 자기의 형태에서도 김시영은 저절로 형성되는 자연을 지향하는 듯하다. 무서운 것은 그것이 재료에 대한 작가의 완벽한 통달에서 온다는 점이다.

 

도예가 김시영의 흑자가 영묘한 빛으로 존재감을 알린다면 목수 이정섭의 가구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이 강하다. 이정섭의 가구는 처음 보았을 때 딱딱하고 엄격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테이블은 상판이나 다리가 두껍다. 이런 두툼한 재료들이 수직과 수평의 선만으로 만나고 확장돼 견고하고 강직하다.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모더니즘이 만개하여 전세계 가구는 이른바 '세련미' 를 향해 질주해왔다. 강철 파이프나 합판, 플라스틱과 같은 강하고 가볍고 조형이 쉬운 재료의 등장은 더 얇은 상판, 더 얇은 다리, 우아한 곡선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공중에 부유할 것 같은, 미학적으로 세련된 가구 디자인을 낳아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정섭은 전혀 다르게 가구에 접근한다. 이는 그가 집을 짓는 대목수로부터 출발한 경력에서 기인한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그는 그 일을 계속해야 할지 그 분명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우연히 그는 집 짓는 일에 빠져들었다. 그는 집을 짓는 일에서 안정된 구조와 정직한 쓸모에 대해서 깨달았다. 그가 초기에 만든 가구들은 한국 집짓기에서 흔히 보이는 사개맞춤을 적용한 것이다. 사개맞춤은 기둥과 보가 한치의 남김 없이 정확하게 결합되는 이음법으로 못과 같은 부수적인 재료를 쓰지 않고도 튼튼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지혜로운 기술이다. 대목수로 일을 하면서 익힌 이런 구조를 가구에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가구는 마치 한옥의 뼈대만 남긴 것 같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모습이다. 그것은 대단히 튼튼하고 안정되어 상판을 길게 늘여 아름다운 비례를 가능케 한다. 그런 안정된 비례가 상판이 두껍다는 인상을 상쇄한다.

 

하지만 이정섭에게는 비례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집이 자연과 무관하게 엉뚱하게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가구 또한 집 안에서 가장 가구다운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두께를 얼마로 해야 더 세련되 있나? 또는 상판을 다리로부터 얼마나 더 길게 뽑아야 긴장감이 생길까? 하는 고민은 매우 디자인적이다. 그것은 어떤 형식미의 경지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그런 아름다운 형식미를 창조하고자 구조와 재료의 혁신을 낳고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제 더이상 새로운 디자인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혁신은 고갈되었다. 그런데도 혁신과 새로움의 강령은 지속되고 강화된다. 그 결과 혼자 존재감을 외치는 가구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런 흐름과 무관하게 이정섭은 가구가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부터, 즉 내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식을 갖추는 방법을 찾는다. 그가 말하는 가구의 '생명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유행과 관계 없이 수십 년이 지나도 자기 구실을 하는 튼튼한 가구. 그 가구의 형식이 그가 구하고자 하는 내용의 필연적 결과인 그런 가구 말이다. 서구의 찰스
임스(Charles Eames)와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 같은 대가들이 개성이 충만한 자의식적인 가구를 디자인했다면, 이정섭은 개성보다는 보편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전문가가 가르쳐주어야 그 의미를 깨닫는 혁신적인 가구가 아니라 생활인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가구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것이다.

 

김시영과 이정섭 두 사람 모두 강원도 홍천에서 두문불출하며 작업에 몰두한다. 깊은 산골 속에 가서야 비로소 이런 장인의 손길을 만나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직 재료와 싸움하며 궁극적인 공예의 길에 이르려는 그들의 작업 과정은 손의 테크닉 상실을 강요하는 첨단 세상에서 매우 소중하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공예는 시대착오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Exploring Boundaries: Carpenter and Potter>

Shinsegae Gallery

 

 

 

In May 2018, the Shinsegae Gallery presents "Exploring Boundaries," an exhibition featuring carpenter Lee Jeongseop and potter Kim Syyoung. Though their materials may differ, both artists venture into new territories at the edges of their respective genres.

 

Born and raised in Masan, Gyeongsangnam-do, in 1971, Lee Jeongseop's artistic journey took an unexpected turn. After dropping out of high school and briefly pursuing painting at Seoul National University's College of Fine Arts, he found himself drawn to carpentry. His inaugural and final solo exhibition at Euljiro-1-ga Station Gallery marked his transition from painter to carpenter. He abruptly discarded his brushes, ventured to Taebaek, and apprenticed in traditional Korean house construction. Fascinated by the creation of spaces where people live and breathe, Lee honed his skills, eventually establishing his own workshop in Naecheon-myeon, Hongcheon-gun, Gangwon Province, in 2002. By meticulously observing the properties of materials, such as air-dried wood aged over 400 years and charred wood, Lee crafts furniture using the traditional Korean joinery technique, enhancing both stability and utility. His creations, characterized by simplicity and functionality reminiscent of Joseon-era furniture, emanate a palpable tension and aura from their proportionate, meticulously refined surfaces. Unlike trendy disposable interior items, Lee's pieces embody the essence of furniture, deeply rooted in the nature of materials. Recently, he has ventured beyond wood, experimenting with new materials like iron and concrete, indicating exciting prospects for his future endeavors.

 

Kim Syyoung, who grew up in the household of the late calligrapher Lee Won-young, fostered an interest in fire during his days at Yongsan Technical High School. After majoring in metallurgical engineering at Yonsei University, his life took a serendipitous turn when he encountered black ware, eventually leading him to study at the Materials Engineering Department of Yonsei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Industry. Fully immersed in the world of pottery, Kim left his corporate job behind. His dedication paid off when his work caught the attention of Jung Yang-mo, the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atapulting him into prominence. Bestowed with the title of the finest black porcelain artist by the 15th-generation descendant of Japan's most prestigious pottery lineage, Shim Suga-gwan, Kim's pottery is acclaimed for its versatility, reflecting myriad hues from azure to reddish-black, owing to various factors such as soil type and firing temperature. Deviating from traditional forms like moon jars, Kim now pursues irregular, distorted shapes, transcending the confines of traditional craftsmanship to establish black ware as a form of contemporary art.

 

Despite their nuanced differences, Lee Jeongseop and Kim Syyoung share striking similarities. From the calloused hands that embody the toil and triumph of labor to the sunny demeanor of individuals who have found fulfillment, they exude a mutual tenacity, determination, and perseverance. While their artistic outcomes may differ, a certain homogeneity can be discerned from the latent power emanating from their works. Lee's pieces resonate with a serene yet compelling tension derived from precise proportions and immaculate forms, while Kim's works bear traces of the artist's unwavering determination and the pinnacle of fire and earth's collaboration within crumpled, distorted shapes, exuding an explosive, solidified energy. Their creations encapsulate a harmonious blend of tradition and contemporary sensibility, transcending imitation and restoration to pioneer new realms. Lee meticulously pursues the essence of furniture through rigorous rationality and calculation, earning him the moniker of a minimalist paragon. Meanwhile, Kim ventures beyond the practicality and traditional forms inherent in pottery, delineating new boundaries across genres. Together, their collaboration serves as a platform for contemplation, where carpentry and pottery converge, inviting observers to revel in the tension and tranquility within the aftermath left on the fringes of boundaries.

<경계를 가다: 목수와 도공>
신세계갤러리

목수 이정섭과 도공 김시영이 함께하는 '경계를 가다'전을 개최한다. 재료는 다르지만 각 장르가 갈 수 있는 경계선 끝에서 새로운 시도를 열어가는 작가들이다.

 

이정섭은 1971 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산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화가의 뜻을 두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림을 깊이 경험한 후 그리는 것에 큰 뜻을 품지 못하게 되었다. 서울 지하철 2 호선 을지로입구역갤러리에서 첫 번째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하고, 돌연 목수가 되겠다며 붓을 내던지고 태백으로 가서 한옥짓기를 배웠다. 대목수로서 사람이 살고 숨쉬는 공간을 만드는데 관심을 두었다. 한옥을 짓는 일에서 안정된 구조와 정직한 쓸모에 대하여 깨달았고, 2002 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산 속에 자신의 살 집을 짓고 내촌목공소를 설립하면서 가구 만들기에  들어섰다. 작업에 쓰일 재료의 물성에 매우 주목하며, 나무를 400 년 동안 건조한 것과 비등하게 만들어낸 탄화목을 많이 쓴다. 한옥에서 기둥과 보가 얽히고 맞물려 서로를 더 강하게 결합시키는 기법인 사개맞춤법을 이용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가구들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조선의 가구들과 툇마루처럼 간결하고 생활에 필요한 요소만을 압축하여 본인 스타일로 만들어 냈다. 재료의 본성만이 심플하게
드러나는 꽉 찬 비례와 치밀하게 다듬은 표면에서 팽팽한 긴장감과 아우라를 뿜어 낸다. 유행에 따라 금방 쓰고 버리는 인테리어 소품이 아닌 가구의 본질에 천착한 것이 그의 물건이다. 최근에는 나무라는 목수의 기본적 재료를 벗어나 쇠나 콘크리트 등 새로운 재료들로 실험을 하고 있다. 재료와 장르를 넘나 들어온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김시영은 서예가 故 두남 이원영 집에서 자랐다. 용산공고에서 불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고 연세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산이 좋아 대한민국과 해외의 큰 산을 누비고 다니다 우연히 만난 흑자에 매료되어 산업대 학원 요(窯) 업전공에 진학했다. 이후 내로라하는 기업에 취직하여 다녔지만 흑자를 만들고 연구하는 일에 빠져 직장을 그만두어 버렸다. 오로지 도자기에만 빠져있던 도공은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 관장의 눈에 띄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김시영의 도자기는 400 여년 전 정유재란 이후 일본 최고의 도자기 가문을 이룬 '심수관요' 15 대손으로부터 최고의 흑유자기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름이 일본 '미술가명감'에 수록이 되기도 하였다. 흑자는 철분이 함유된 유약을 발라 청자나 백자보다 높은 고온에서 구워낸다. 그 제작법이 기술적으로 특히 복잡하며 난이도가 높다. 청자나 백자, 분청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도자기법의 다양성과 수준이 높았던 고려시대에 성행하다가 절제와 근검을 중시하는 조선시대에 쇠퇴하였다. 흙의 종류와 불의 온도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천변만화한다. 30 여년간 수천 번의 가마질을 통해 얻은 김시영의 혹자는 푸른 빛부터 은회색, 검붉은 빛까지 빛깔과 색채의 모든 가능성을 머금고 있는 소우주를 연상시킨다. 최근 달항아리를 비롯한 전통적인 형태의 유형을 벗어나 찌그러지고 녹아버린 비정형을 지향하고 있다. 전통의 기능과 형태를 벗어나는 파격과 파형에서 흑자를 전통공예의 한계를 넘어선 현대미술로 자리매김시키려는 의지를 확인 할 수 있다.

 

 

김시영과 이정섭, 두 사람은 묘하게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노동의 고통과 성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친 손과 대비되는 득의자들만의 해맑은 표정부터 그렇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치밀함과 고집, 집요함이 무척이나 비슷한 사람 들이다. 두 사람의 작품은 결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잠재되어있는 힘에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정섭에서는 고요함과 벅찬 긴장감이 맴돈다. 정확한 비례와 군더더기 없이 섬세한 형태에서 기인한 정적이 담고 있는 에너지이다. 김시영에서는 뭉개지고 무너진 형태 안에 흔적으로 남은 작가의 의지와 불과 흙의 절정이 있다.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다채로운 색상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고체화된 에너지를 뿜어낸다.

 

 

두 사람의 작품에는 전통과 현재적 미감이 공존한다.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으나 복원과 모방의 경계를 넘어서있다. 세상에 없던 것을 찾으려는 고집스런 구도의 결과이다. 이정섭은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연구하고 계산하여 가구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여 미니멀의 극치라는 호칭을 얻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재료를 넘나들며 또 다른 경계넘기를 시도하고 있다. 김시영은 도예의 가장 큰 존재근거인 실용성과 전통적 형태를 버림으로써 장르를 넘어 새로운 경계선을 긋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는 목수와 도공이 각자의 극단을 대면하는 방식을 비교하며 경계의 안팎에 남겨둔 결과물 들이 만드는 긴장과 기분좋게 조용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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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RAW MATERIAL TO ART WORK

Kim Syyoung, Jeongsup Lee.

Baegak Art Space 

2017

<From Raw Material to Artwork: Potters and Woodworkers>

Jeong Youngmok _Director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Art Museum

2017

 

 

 

Transmaterial

 

Artworks are deeply rooted in materiality. In this regard, artists can be likened to magicians who transform materials. While some pursue changes in form while maintaining the properties of the material, others seek distortion and mutation, going beyond its inherent qualities. Furthermore, materials are often encoded with imagination and symbolism. Examples include Duchamp's urinal and Beuys' fat works. In the era of postmodernism, humanity finds itself living amidst a plethora of biological and chemical changes, entrusting our bodies and minds to everyday life.

 

Various plastic products and vinyl packaging, akin to the artifacts of this industrial society, blur the lines between reality and artifice, often rendering originality and authenticity meaningless. Hence, the pursuit of uniqueness and genius, characteristic of modernism, loses its significance. Instead, we find ourselves in an era of paradox, where the notion that everyone and everything can be art proliferates, demanding survival as artists in a battleground of extreme concepts and ideas.

 

In such a world, insisting on raw materials and valuing process over outcome becomes meaningful. Two artisans of our time, potter Kim Syyoung and carpenter Jeongsup Lee, wager their livelihoods on the labor of their work, crafting the everyday life of art and existence, which they present to the world through a meticulously curated exhibition. Kim Syyoung manipulates clay, water, and fire, while Jeongsup Lee works with wood and iron. If one were to list their daily routine, it would entail grappling with the rawness of each day, a struggle that epitomizes the seven days of a week. Their work directly impacts our lives; Kim creates ceramics, including the black-branded ware, while Lee constructs homes and functional furniture. Both are established mid-career artists in their respective fields, and interestingly, they both reside and work in Hongcheon County.

 

 

 

Kim Syyoung and Jeongsup Lee

 

In this exhibition, I was particularly struck by Kim Syyoung's deformative-like sculptures. While he has previously focused on traditional black ware and everyday ceramics, this time, his pieces exude more artistry than functionality, more deviation than tradition, and more energy than beauty. Especially, his bold and deformative forms, along with the texture of the surface, exuded more energy than any ceramic work I have encountered before. While pondering on the source of this energy, possibly arising from the artist's nearing sixty, I couldn't help but speculate that it's a relentless freedom beyond limits that paradoxically creates a profound sense of containment.

 

Throughout human history, the art of pottery has inherently pursued the containment of something. Unlike the sense of shape pursued by painting or sculpture, pottery, by virtue of its function, cannot escape its inherent limitations. Furthermore, the deviation in pottery encounters inevitable frustrations and satisfactions as it meets chance through the fusion of heat and fragility, to the extent that one could say the potter is nurtured by the clay as much as the potter nurtures it. Kim Syyoung has fearlessly approached forms through this iterative process, growing into a lion of forms as he ages. Now, with a sentiment of 'going all the way' rather than a rational balance between sensibility and reason, his works naturally emanate energy. It is a remarkable phenomenon.

 

In contrast, Jeongsup Lee is a thoroughly researched and calculated artist, intolerant of even the slightest error. Recently, as he delves into working with iron, his rational meticulousness seems to be increasingly aligned with the material. Reflecting on his past journey of building homes and crafting furniture, it becomes understandable why he's recently fixated on iron. His attitude towards mastering the fundamentals and adhering to them seems to resonate with the material itself. Hence, I believe that the scale of his work is the most significant virtue by which to evaluate his craftsmanship. This is because a change in scale in handling materials not only adds a crucial difference based on the experience of craftsmanship but also, particularly when dealing with tasks that encompass the entire space, necessitates an inherent appreciation for quantitative precision. Lee's recent works with iron, infused with a minimalist aesthetic, reflect his sculptural prowess and precision. It is a commendable endeavor.

<From Raw Material To Art Work>
정영목_서울대 미술관장

 

 

Trans Material
 

미술작품은 물질에 천착한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는 물질에 변형(變形)을 가하는 마술사라 할 만하다. 물질의 속성을 유지한 채 형태만의 변화를 추구하는가 하면, 그 속성 자체를 넘어 변질(變質)과 변이(變移)를 꾀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상상과 상징으로 물질이 기호화되기도 한다. 뒤샹(Duchamp)의 변기나 보이스(Joseph Beuys)의 지방(fat) 작품이 이들의 대표적인 예라 할만하다.
 

한편, 포스트모던의 이 시대에 인류는 온갖 생물학적, 화학적 변화와 함께 우리의 몸과 정신을 내맡긴 상황 속에 일상을 살고 있다. 각종 플라스틱 제품과 비닐 포장 등이 자본주의의 경제학을 등에 없고 이 시대 산업사회의 도상처럼 떠돌아다니며,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무색케 하거나, 뿌리에 관한 원본과 원류의 근거들을 무의미하게 취급 하기도 한다. 때문에 작가로서의 독창성과 천재성 같은 모더니즘의 산물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모든 사람,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개념과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각개전투의 시대를 작가로 살아남아야 하는 역설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 날 것으로서의 물질(raw material)'을 고집하며 '결과보다는 과정(process)’을 의미 있어 하고, 작업의 노동으로 승부를 걸어, 삶과 예술의 일상을 꾸려가는 이 시대 의 진정한 장인(匠人) 두 사람, 도공 김시영과 목수 이정섭의 최근 작품들을 묶어 기획 의도에 합당한 전시로 연출하여 세상에 내어놓는다. 김시영은 흙(土)과 물(水)과 불(火), 이정섭은 나무(木)와 쇠(金)를 다룬다. 해(日)와 달(月)을 품은 한 낮의 노동과 밤의 휴식, 그 일상들을 모두 나열하면, 그야말로 일주일의 칠(七) 일을 '날 것'들과 씨름하고 노니는 작가들이다. 이 둘의 작업은 우리의 생활에 직접 관여한다. 김 도공은 도자기로 그 중에 서도 검정빛이 도는 흑자 브랜드로, 이 목수는 집짓는 목수 겸 기능성의 가구와 쇠붙이를 생산한다. 이 둘은 각자의 분야에 나름대로의 실력과 명성을 형성한 중견급의 작가이자, 흥미롭게도 둘 다 홍천군에 살면서 작업한다.

 

 

김 도공과 이 목수


필자는 이번 기획전에 김시영의 파형(波形) 작품에 주목했다. 그동안 흑자로서의 전통과 생활도기(生活陶器)에 주력하여 많은 개인전을 가졌지만, 이번에는 '기능성보다는 작품성, '정통(正統)보다는 일탈(逸脫), '아름다움(beauty)보다는 에너지(energy)가 충만 한 작품들을 연출했다. 특히, 얌전하지 않은 그의 파형적인(deformative) 형태 감각과 표면 질감은 필자가 접한 어느 도자 작품보다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 에너지의 원천이 이제 나이 육십에 접어드는 작가의 무엇에서 발현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내심 추측하면서도,어떤 한계를 넘어선 그의 지독한 자유로움이 역설로서 빚어낸 숨 고르기 같은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도자의 예술은 태생적으로 무언가를 ‘담는 형태’를 지향해 왔다. 때문에 회화나 조각이 추구하는 형태(shape) 감각과 달리 기능(function)을 수반한, 아니면 고려한 형태일 수밖에 없으므로 도예가의 파형적 일탈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녔으며, 그것은 또한 불의 온도와 유약의 결합에 따른 우연과 만나면서 수 없는 좌절과 만족을 경험하며, 작가가 도자를 키우기 보다는 반대로 도자가 작가를 키운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반복의 과정이 김시영을 겁 없이 형태에 덤벼드는 늙어가는 숫 사자로 키웠고, 이제는 감성과 이성의 합리적인 조절보다는 ‘끝까지 간다’는 심정으로 자유를 밀어붙이니 작품 스스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밖에 없다. 좋은 일이다.
 

이와 반대로 이정섭 목수는 철저하게 연구하고, 계산하여 한 치의 오차를 용납할 수 없는 성정의 작가라 말할 수 있다. 최근 쇠를 다루면서 그의 이러한 이성적 치밀함은 쇠와 더욱 걸맞게 닮아가고 있다. 집 짓는 일과 가구를 만드는 그의 지난 여정과 비교하면 그가 요즘 왜 쇠에 미쳤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매스(mass)’와 ‘볼륨(volume)’ 그리고 이제는 '중력(gravity)’까지에도 도전하는 이 목수의 태도는 무언가 기본을 알고, 그에 충실 하려는 원형적(原形的) 사고의 표상 같은 생각이 들어 그의 작품은 항상 믿음과 신뢰가 뒤따른다. 때문에 작품의 스케일(scale)이야말로 이 목수의 작품을 평가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물질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스케일의 변화란 그 ‘노하우’의 경험에 결정적인 차이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특히 공간 전체를 다루어야 하는 작업일 때에는 그에 따르는 계량(matrix)적인 정교함을 태생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쇠와 함께 그가 미니멀(minima) 풍의 작업을 시도한 이번 작품들은 이러한 이정섭 목수의 조형적 장점과 성정이 반영되었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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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t the countless black eyes

Kim Syyoung

Korea Ceramic Foundation 

2014

<In the Depths of Black: Meeting Countless Pupils within Kim Syyoung's Black Ware>

Choi Riji_Korea Ceramic Foundation

2014

 

 

Within Kim Syyoung's black ware lies a multitude of pupils. While appearing as simple black from afar, his black ware, akin to the unique irises of Koreans, emits individual, mysterious, and subtle lights, each with its own distinctive radiance. Therefore, to succinctly define the color of black ware is no easy task, even for those with a rich vocabulary.

 

The name itself, unfamiliar—black ware (黑磁). Black ware, originally crafted during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and continued through the Goryeo Dynasty, was our indigenous pottery. However, its scarcity compared to celadon or white porcelain, coupled with its limited practical utility in daily life, gradually led to its lineage being severed and its traces obscured. It was Kim Syyoung who revived this forgotten black ware, positioning it at the forefront of the ceramics field and societal discourse.

 

Kim Syyoung, grounded in his academic background and innate dedication, has spent over twenty years exclusively researching and dedicating himself to black ware. As the hue of black ware is greatly influenced by subtle changes in the firing process, the artist, through relentless study of both clay and glaze, continually seeks out new hues of black ware. The diverse variations naturally formed on the ceramic surface through the subtle changes in the firing process are considered the most significant allure of black ware.

 

Displayed at the Moon Room of the Yeojoo World Living Ceramic Museum, Kim Syyoung's works lead us into a boundless celebration of the infinite light possessed by black ware, at times dazzling us with vibrant gold and silver hues. The artist presents black ware as an everyday vessel, familiar to viewers accustomed to white ceramics, offering the beauty and diversity of daily life.

 

Mastering the trio of clay, glaze, and the subtle changes of fire, the resplendent light of black ware, perfected through the artist's endless experimentation, research, and dedication, bears the fruit of his labor. This fruition now inscribes the current record of black ware, paving the way for new histories to be written as hope for the future.

 

 

 

<흑자(黑磁) 그 수많은 눈동자와 만나다>
최리지_한국도자재단 큐레이터

김시영의 흑자 속에는 수많은 눈동자가 있다. 그의 흑자는 멀리서 보면 단순한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실은 저마다 고유의 빛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눈동자처럼 그 어느 하나도 일치함이 없이 제각기 신비하고 오묘한 빛을 낸다. 그렇기 때문에 흑자의 색을 한마디로 정의내리는 것은 그 어떤 풍부한 어휘력의 소유자라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이름도 생소한 흑자(黑磁). 흑자는 본래 통일신라 말기에 시작되어 고려시대 전후기에 걸쳐 만들어진 우리 고유의 도자기였다. 그러나 검은 색의 자기는 청자나 백자에 비해 희소성은 높지만 생활에서의 활용도가 적어 점차 그 명맥이 끊기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 잊혀졌던 흑자를 도자계의 화두로, 또 세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김시영이다.

 

김시영작가는 그의 학문적 배경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집념과 끈기를 바탕으로 20여년간 오직 흑자에 대해 연구하고, 매진해왔다. 흑자의 빛깔은 불의 미세한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작가는 흙과 유약뿐 아니라 끊임없는 불 연구를 통해 새로운 흑자의 빛깔을 찾아낸다. 불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자기 표면에 형성되는 다채로운 요변은 흑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주세계생활도자관 달(月)방에서 전시되는 김시영의 작품들은 강인한 검은 빛으로 때로는 화려한 금빛과 은빛으로 우리를 흑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빛의 향연으로 이끈다. 작가는 식탁 위, 백색의 자기에 익숙한 관람객들에게 일상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선사하는 생활자기로서의 흑자를 제안한다.

 

흙과 유약 그리고 미묘한 불의 변화, 이 삼박자의 완벽한 체득을 통해 완성되는 흑자의 영롱한 빛은 작가의 끝없는 실험과 연구,집념이 빚어낸 결실이다. 그 결실은 이제, 흑자의 현재의 기록이자 미래의 희망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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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pots look as kim syyoung himself

Kim Syyoung

 

Open Studio

2011

<These pots look as Kim Syyoung himself>
Ahn JungGuk_Novelist

Early 80’s, when I took a charge of Yonsei University Alpine Club after military service, CheongGok Kim Sy-young was a second grade student in that Alpine Club. My first impression was so when I murmured ‘Why is this young guy look so old?’ in mind, and I laughed at later thinking ‘he does what he looks.’ From his young age. he was benign like a cow and somewhat simply honest. What standing out from him was his benign nature. While climbing a rock mountain, if cold wind from North comes, he took his jacket off for first grade juniors who were still so naïve. What he said from time to time in trembling was ‘Hi, you guys OK?’ His behavior of caring and encouraging juniors, worrying if they would be injured or get accident, was no less than that of mother hen which tried to embrace chicks under its wings. How many times did I see Kim Sy-young’s those behaviors? Even juniors made great mistake, what he expressed his anger only with his low baritone voice was, “What... are you doing?”, that was the maximum.

 

 

A nature of material is its master’s nature. The pottery made by CheongGok has his nature even it is twisted by failed manufacturing process. See potteries manufactured by him. Isn’t it so? They are comfortable and benign. Adding more on that, a round pot like a full moon this time! Round is a symbol of harmony among all, so it is as CheongGok’s nature itself. It seems like if I put one of those at a corner of my house, because of its radiating spirit, all of my house would be peaceful. But he is not only benign. As there is a words that ‘persist is in the order of Ahn, Kang, Choi’, I could see his persist is as strong as I am, who, because my father is Ahn, and mother is Kang and so I heard I was more persist than anybody, shook my head with tiredness on him, and that persist spirit met pottery and made a blossom. It is. The each one of ‘Heukja’s manufactured by him attracted me with deep beauty like a dark red rose which is just blossomed. But he who was well built and strong man reduced to skin and bone like a prisoner of detention camp, and even when I saw he could not straighten his back and struggle for it, I thought what the worth of those thousand or ten thousand blossomed flowers is, so I sighed saying “Hay, if not that pottery, can’t you make a living?” Like that, he put everything to reproduce our old ‘Heukja’ with firm decision as strong as he hung on a rock of extremity.

 

 

Malcolm Gladwell who is an author of bestselling book <Outliers> and was enlisted as 100 intellects who move the world said ‘Law of 10 thousand hours’ in his book. All the genius like Beatles, Bill Gates, Gogh, Mozart got their genius after concentrating themselves on more than 3 hours for 10 years or 6 hours for 5 years. CheongGok may put a few times of 10 thousand hours to pottery. So I would like to say “Now do only as much as you could. You need to live for a long for your work”, of course CheongGok would not listen to me who even once was a fearful senior to him.
I have vivid memory that I watched around his works with exclamation of ‘How come did that simple honest artist make these potteries with fine lines?’ every time when CheongGok had exhibition. Boasting on CheongGok’s ‘Heukja’ was much greater by Hong OkJoo, CheongGok’s wife, who were also a member of Yonsei University Alpine Club. “Brother, see this pottery pattern. How beautiful it is!” Saying like that, Hong OkJoo loved the pattern that her husband drew with high temperature flame of in and outside of kiln, and even later she herself start to make ‘Heukja’. So to speak, they took a way of couple potters. But did Hong OkJoo overworked as a woman’s who has no other way but to have a weak body? She had been suffered with disease and passed away three years ago.
After leaving of two daughters to dormitory in Seoul, when he sat alone before his kiln in deep valley of Gapyeong, seeing through flame, how deep loneliness would be, which Cheonggok must face at. But he courageously endured. After his wife’s death, it seems like his pottery is getting more and more simple. In another words, his pottery became more and more comfortable to see. The fine and slim shape of ‘Heukja’ which took heart of Japanese had been disappeared with no trace, and it became a moon pot like a comfortable country senior. Because of that? I could see philosophical view now in CheongGok’s pottery.

 

 

Most of moon shaped pots are white like a white full moon. But CheongGok’s moon shaped pot is black pot. The only time the moon becomes black is solar eclipse, it means at the time moon covers the Sun. How dare a moon tried to cover the Sun which is billions times greater than it! Like a moon in the moment, which changes as a color of darkness of burned black, the CheongGok’s black moon pottery is lump of passion, if we understand it deeper. As Lee CheongJun wrote a novel ‘A Pot Holding Fire’ his moon pottery has a spirit of repelling all evil things also.

<청곡이 생겨먹은 그대로의 이 항아리들>

안중국_소설가

80년대 초 내가 제대 후 복학생으로 연세대산악부장을 맡았을 때 청곡 김시영은 산악부 2학년이었다. ‘젊은 눔이 왜 이리 겉늙었누?’속으로 되뇐 첫인상이 그러했고, ‘생긴 대로네’하고 나중에 웃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늙은 소 같이 어질고 다소 우직했다. 한결 두드러져 보였던 것은 어진 품성이다. 암벽을 오르는 도중 차디찬 북새풍이 불어오면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자켓도 벗어서 철모르는 1학년 후배들에게 입혔다. 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간혹 하는 말이, “얘들아, 괜찮니?”였다. 후배들이 혹여 다칠까, 어떻게 될까 저어하며 다독이고 추스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날갯품에 새끼를 껴안으려는 어미 닭 형국이었다. 그런 김시영의 모습을 본 게 몇 번이던가. 후배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기껏 화를 낸다는 게 그 특유의 저음 바리톤으로“어라, 이 녀석들 봐라?”하는 정도가 최고였다.

 

물성(物性)은 곧 그 주인의 품성(品性)이다. 청곡이 만드는 도자기에는 그것이 비록 잘못 구워져 비틀린 것이라 해도 그의 품성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가 구워낸 도자기를 보라. 그렇지 않은가. 편안하며, 어질다. 게다가 이번엔 보름달처럼 둥근 달항아리라니-. 원형은 두루 원만함의 상징이니, 바로 청곡의 품성 그대로다. 집안 구석에 하나 놓아두면 그 기운에 온 집안이 두루 평안해질 것 같다. 그런데, 그는 그저 어질기만 한 것이 아니다. ‘고집 세기로는 안강최 순서’라는 말이 있듯, 아버지가 안씨이고 어머니가 강씨여서 더더욱 질기다는 평을 듣는 내가 질려서 고개를 흔들 만큼 독한구석이 간혹 암벽의 그에게서 엿보였고, 그 근성이 도자기를 만나더니 꽃을 피웠다. 그렇다. 그가 구워내는 흑도자기들은 하나 하나가 갓 피어난 검붉은 흑장미처럼 깊은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했다. 그러나 장골에 힘이 장사였던 그가 수용소 포로처럼 피골이 상접해지고 허리마저 제대로 펴지 못해 절절 매는 모양을 보았을 때는 그까짓 꽃 천 송이 만 송이 피우면 뭘하나싶어, “야, 그 도자기 아니면 못 먹고 사냐”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는 그렇게, 백척간두의 암벽에 매달리듯 독하게 우리의 옛 흑자 재현에 올인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로 세계를 움직이는 지성 100인에 꼽히기도 했던 말콤 글래드웰은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했다. 비틀즈나 빌게이츠, 고흐, 모차르트 같은 천재들 모두가 실은 하루에 3시간씩 10년, 아니면 6시간씩 5년 이상 몰입해서야 그와 같은 천재성을 얻었다고 한다. 청곡은 아마도 1만 시간의 몇 배쯤은 도자기에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적당히 해라, 오래 살며 봐야 할 것 아니냐” 하고 싶지만, 물론 청곡은 한때 무서웠던 선배일 망정 내 말도 귓전으로 흘려버릴 것이다.

 

청곡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저 우직한 화상이 어떻게 이런 날렵한 도자기를!’ 하는 감탄으로 돌아봤던 기억이 선하다. 청곡요 도자기 자랑은 청곡의 처로 역시 연세대산악부원이었던 홍옥주가 더했다. “형(산악부에서는 여성도 남자 선배를 오빠 아닌 형이라고 부른다), 이 도자기 무늬 좀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하며 제 남편이 도자기의 안팎에 고온의 화염으로 그려낸 무늬를 홍옥주는 사랑했고, 나중에는 그녀 스스로도 흑자 만들기에 나섰다. 이를 테면 부부 도공의 길로 접어 들었던 것이다. 그랬던 홍옥주는 그러나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는 여자의 몸으로 너무 무리했던 것일까. 시름시름 앓더니 세 해 전 먼저 세상을 떴다. 두 딸아이마저 서울 기숙사로 보내고 나서 가평 깊은 산골짜기 가마 앞에 앉아 홀로 불길을 들여다볼 때 청곡이 마주해야 했을 외로움은 얼마나 깊었을까. 그래도 그는 용케도 견디어냈다. 아내의 사후 그의 도자기는 점점 더 소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달리 말해 점점 더 대하기가 편해지고 있다. 일본인들의 넋을 앗았던 그 세련되고 날렵한 흑자의 모습은 종적도 없고 편안한 시골 노인 같은 달항아리가 되었다. 청곡의 도자기에서는 그래서인가, 이제는 달관(達觀)마저도 엿보인다.

 

달항아리는 대개 흰 보름달처럼 흰색이다. 그러나 청곡의 달항아리는 검은 항아리다. 달이 검어지는 때는 일식, 곧 달이 해를 가릴 때뿐이다. 감히 달이 수천억 배는 더 큰 해를 가리려 들다니! 그러면서 검게 타버린듯 암흑의 색으로 변하는 단 한 순간의 달처럼, 청곡의 흑자 달항아리는 또한 알고 보면 열정의 덩어리다. 이청준이 ‘불 머금은 항아리’라는 소설을 썼듯, 그의 달항아리는 온갖 삿된 것을 살라버리는 척사의 기운을 품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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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with flames

Kim Syyoung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2010

<Looking for Color at Fire>

Seo JeongGeol_ History of Art, Art Critic

I have never seen nobler art than that uses fire, because no art is more dangerous and unpredictable with results than an art which use fire among all kind of arts.

 

The pottery has no other way but to be completed through fire, though CheongGok Kim Sy-young seeks for change of fire as much as called as ‘author of fire’. He looks for artistic beauty at process of material change which passes over a denaturalizing point of fire. The work of awakening hidden color in organic matter by fire is the core of Kim Sy-young’s art work. Fire is area of nature. The area of the earth is also too. Keep firing of potter is a process of imbuing life to the earth. Through baptism of fire, the pottery gets light and receives dignity. The color produced by his firing shows highlight of change. The mystery of black color he produced is unbelievably beautiful. That is a fruit of art and science.

 

The color of the world generated by light, but the Kim Sy-young’s color is generated by fire. That is precious color obtained by awakening color hidden in the nature. Those are not chemical color, but natural color. His work is same as painting flame on pottery. The
one who control flame is the artist, but the one who supervise change of fire is the nature. Those colors are deep and calm. The black calmness like a night and deep abyss like space...it is natural that CheongGok’s ‘Heukja’ gets modifiers like “light of space” or “mysterious color”. But I would like to say “clear and pure black color as black eyes of genuine animal” rather than those serious expression.

 

His black pottery has clear, calm and deep feeling. The reason that his works are great is not because of various expression of color or outstanding technique but because resonance of spirit was imbued in its color and forms. That is the level only by practice of technique could not reach. That is the world possible to reach only with accompany by deep introspection and mental practice.

 

The pottery is an art and science at same time. The point which makes pottery different from other arts is that it has high share of science. Both of the art and science are developed by study and experiment. Kim Sy-young is a principle based scientist. He majored engineering based on science and worked at Korea Institute of Ceramic Engineering & Technology. Since he had decided to be a potter, he has studied and experimented the earth and fire in his workroom at Gapyeong for 20 years. That was sometimes a scientific study and sometimes a rough way of art creation. Religious practice would be same as it is. He took the earth from a mountain at Gapyeong for experiment, and experimented fire with various kilns like oil kiln, wood kiln and gas kiln etc, and visited museum many times to succeed inheritance of ancient pottery. He has spent 20 years on the border of the art and science. And he found his way by reproducing the world of ‘Heukja’ which had been sleeping in tradition of Goryeo.

 

No art is easy, but the pottery is particularly difficult because it is impossible without help of nature. The earth is flexible material which accepts everything, but it is also the only material which resist to artist. The earth is pure material which has been less civilized than any other ones. It is not refined or controlled material like metal, but it has living liquidity. To handle the earth freely, artist must work with the earth for a long time. If the artist could not detect subtle change of the earth, he could not imbue his spirit in it.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the earth is same as the process of realizing the principle of the world. So the way of pottery is not different from the way of life.

 

The life handling the earth by concentrating all his spirit like climbing a mountain slowly one step and another, inflaming fire as imbuing spirit, and completing a most perfect pottery. He says “I am walking a slow but deep way of Sagijang(pottery making)”. The agony and introspection of his days would be in the black pots exhibited this time.

<불에서 색을 찾다>
서정걸_미술사,미술비평가

“모든 종류의 예술 가운데 불을 사용하는 예술보다 더 위험스럽고 결과가 불확실하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귀한 예술을 나는 본 적이 없다.” – 폴 발레리

 

도예란 어쩔 수 없이 불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지만, 청곡 김시영은 ‘불의 작가’ 라 할 만큼 불의 변화를 추구한다. 불의 변성점을 지나 물질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예술적 묘미를 찾는 것이다. 불을 통해 유기물 속에 잠재되어 있던 색채를 일깨우는 작업이 바로 김시영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불은 자연의 영역이다. 흙 또한 그렇다. 도예가의 불때기는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불의 세례를 통해 도자는 빛을 얻고, 격조를 부여 받는다. 그가 불로 빚어내는 색채는 변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가 빚는 흑색의 오묘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것은 예술과 과학의 결정체다.

 

세상의 색들은 빛에 의해 생성되지만, 김시영의 색들은 불에 의해 생성된다. 그것은 자연속에 감추어진 색을 일깨워 얻어낸 귀한 색이다. 그 색들은 화학적 색채가 아니라 천연의 색채다. 그의 작업은 마치 도자에 화염을 칠하는 작업과 같다. 그 화염을 조정하는 것은 작가이지만, 불의 변화를 주관하는 것은 자연이다. 그 색들은 깊고 고요하다. 밤같이 까만 흑색의 고요와 ,우주처럼 깊은 심연...청곡의 흑유자기들에 대해 “우주의 빛” 또는 “신비의 색” 같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는것도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나는 그런 무서운 표현들보다 “착한 짐승의 검은 눈동자처럼 맑고 순수한 흑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흑자들은 맑고 고요하며, 깊은 느낌이 난다. 그의 작품들이 훌륭한 것은 단순히 다채로운 색의 표현이나 기교의 뛰어남 때문이 아니라, 그 색채와 형태들에 정신의 울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술의 연마로는 도달할 수 없다. 깊은 성찰과 정신의 수련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세계다.

 

도자는 예술인 동시에 과학이다. 도자가 여타의 예술들과 다른 것은 바로 과학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예술이나 과학이나 탐구와 실험에 의해 발전된다. 김시영은 원리 과학도다.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공학을 전공하고 요업기술원에도 근무했다. 도예가의 길을 결심한 이래 20여년 동안 가평의 작업실에서 흙과 불을 탐구하고 실험해 왔다. 그것은 때로 과학적 탐구이기도 했고, 때로는 예술적 창작의 험난한 길이었다. 아마도 종교적 수행이 그와 같을 것이다. 가평의 산들을 오르내리며 흙을 퍼다 실험하고, 기름가마, 장작가마,가스가마 등 여러 가마들을 가지고 불을 실험하고, 옛 도자의 숨결을 잇기 위해 박물관을 오갔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 위에서 20년을 보냈다. 그리고 고려의 전통속에 잠자던 흑자의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그의 길을 찾았다.

 

모든 예술이 쉬울 수는 없지만, 도자는 자연의 조력없이는 불가능한 세계여서 어렵다. 흙은 모든것을 수용하는 유연한 재료지만, 작가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재료이다. 흙은 가장 덜 문명화된 순수한 재료다. 나무나 금속처럼 정제되고 조절된 재료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동성을 갖고 있다. 흙을 자유롭게 다루려면 오랜 시간 흙과 함께 해야 한다. 흙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작가의 의식을 담아낼 수 없다. 흙을 알아가는 과정은 세상의 문리를 터득해가는 과정과 같다. 그러므로 도예의 실은 삶의 길과 다르지 않다.

 

산을 오르듯 천천히, 한발 한발 심혈을 기울여 흙을 빚고, 혼을 불어넣듯 불을 지펴, 가장 완벽하게 빛나는 한 점의 도자기를 완성해내는 삶. 그는 “느리지만 깊은 사기장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흑유항아리들 속에, 그가 살아온 날들의 고뇌와 성찰이 담겨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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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ist creates black pottery and two daughters

Kim Syyoung

Korea Exchange Bank

2010

<An Alchemist Makes Black Pottery and Two Daughters. black glaze ceramic Master Kim Sy-Young>
Park JongIn_Reporter of Chosun Ilbo

Kim Zain(24) is a student of Ewha Woman’s University and Gyeongin(20) is a studen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Both of them are students of the Department of Plastic Art in College of Fine Art. They who were educated at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in
Gapyeong, Geonggi-do, entered university without registering at any private academy or taught by any personal tutor. There is a place that those sisters visit frequently.

 

At 100th days after JaIn’s birth, her father who was obsessed by mountain climbed Insubong with his wife and baby on his back. Second daughter GyeongIn went to Mt.Lhotse and Mt. Everest for trekking. Both daughters said. “We have grown up hoping to succeed father’s work.”

 

CheongGok Kim Sy-young(52), father of two daughters who would carry on his work, is a potter. He who makes splendid blackware that is no less than celadon said. “I am happy because high quality pottery comes from generations of work, and my daughters accept
it by their own will.”

 

Kim Sy-young who was born at Gapyeong-Eub went to Seoul for study at 7 years old. He went to school staying at house of Doonam Lee WonYeong(passed away at 2008) who was a Korean calligrapher lived in Japan. Lee WonYeong asked him to grind an ink stick

and gave life’s good words to him.
 

“Become an artist when you grow up...” When came back from Japan, Lee WonYeong brought pack of tools and equipments for him with no exception. He said “I decide to be a master when grow up.” So the school he went to is Yongsan Technical High School,
department of Metal engineering.

 

There was a small blast furnace there at 1974. He met fire there. At a scene that a metal which was baptized by fire revived as totally different material with different feeling, he said, “I dreamed to be an alchemist.” He read books whatever they were.

 

“One of a day, while I read philosophical book, boys were playing and shouting. So I put that book down and hit the table with my fist.” That thick table was totally broken down by only one time blow of fist.

 

Kim Sy-young’s imagination jumped up to another direction. “I will get gold medal in boxing at Moscow Olympic Games.” There was lots of strong man in his family including his eldest brother who was famous as a Korean wrestle player in Gapyeong. He met fire
and books at day time and hit sandbag at night.

 

One of his teachers wrote like this in his biography later. “A trouble maker reproduced Goryeo Blackware.” Kim Sy-young entered Department of Metal Engineering, Yonsei University. The target of a student of class at 77 was alchemist.

 

Then he suddenly met a mountain. He entered alpine club. And he totally became crazy about it. The alpine club was organized thoroughly focusing on joining order. It is an army. He climbed mountain serving to students who entered university at same year but

joined alpine club earlier than him as his seniors.

 

The only female ‘move in senior’ whose name was Hong OkJoo of same age taught him about mountain by bat beating. And the bat became a love and they married to have a baby. That baby was elder daughter who went to Insoobong at her 100th day.
The mountain inspired him a pottery. He saw a piece of ‘Heukja’ passing by slash and burning farmer’s veggie patch while he climbed mountain with Hong OkJoo. How come is a pottery black? His curiosity grew bigger. The curiosity of a student of Department of
Material and Engineering changed

 

Kim Sy-young’s life totally later. After graduation of the school, he went to army for military service, and then entered ceramic researcher of National Industrial Research Institute. The purpose was to study ceramic. He said “I want to develop most advanced material like strongest nife in the world.” He took a position of factory manager. But his dream was still at the level of alchemist.

 

Then old potters whom he met at Echeon planted him a desire of creativeness. The line of pottery, mysterious color, pattern and feeling which were made by the earth, glaze and fire started to surround him. The piece of ‘Heukja’ resurrected.

 

He started to research material first at Department of Ceramic Engineering, Graduate School, Yonsei University. He worked at day time and study material at night. After graduation of master’s course at 1990, he quit his job and open Gapyeong kiln at his home town at 1991.

 

Kim Sy-young said. “The color and pattern of blackware change greatly by nature of flame.” It is called change in a kiln, and all things in universe are created by denaturalization of glaze and the earth in flame. If anybody tastes it once, he couldn’t see anything else.

 

Father was crazy about the earth, but children grew quickly and healthily in the nature. Wife gave strict education to children instead of father. Kim Sy-young ‘studied’ flame and the earth for 10 years. “I recorded all data. Like if I put pots to where, what happen etc.”

 

After that, another 10 years has been spent for art creation. That was much different from work of ancestors who relied their work on sense. “If approached scientifically, pottery is easy. If studied like that, sense will be gained.” So he doesn’t pay attention to numbers on the contrary.

 

The ‘Black color’ he created is limitless and mysterious. Black color which absorb anything around like black hall, shining dark color which seems like repelling everything, maewha pictured by change in kiln at which fire reached, snow mountain, sea are in that
black space.

 

Bishop Jang Ik of Catholic Church in Chooncheon parish recognized poor potter who secluded himself at country side and was making pottery at 1997. The bishop introduced the potter to Jeong YangMo, the president of National Museum of Korea at that time, so ‘Heukja’ potter CheongGok Kim Sy-young revealed his face to the world.

 

Since then, many collectors of his works generated and his works were sold out. The assessed price of Kim Sy-young’s Malchadawan(Teacup) is recorded as 970 thousand Yen in ‘Artist List’ published by Japan Art Club at 2009. The price of a small teacup is 10million Won.

 

The ‘Artist List’ is an artist’s name book that Japanese auction companies basically refer to. He was enlisted as a master who rarely works on ‘Heukja’ in China, Korea and Japan. Time waits nobody. While a man concentrated himself on the earth, his wife had kidney disease for 11 years and became a star in heaven at Apr. 2008.” Kim Sy-young said. “I miss her.” He had memorial exhibition for Hong OkJoo at that year. The subject is Seolsan(Snow Mountain) at which he met her.

 

A potter misses his wife and makes works with his two daughters. The daughters care their father sometimes like their mother, sometimes like cute daughters, and sometimes as colleagues who criticize on his works.

 

“It looks like it is not me who made ‘Heukja’. It must be ‘Heukja’s autogenic power which led me until here. It is 10 years since I had that feeling.” A man who dreamed an alchemist is looking at young juniors who would carry on his work.

<연금술사, 검은 도자기와 두딸을 빚다 .’흑유’(黑釉)匠人 김시영>

박종인_조선일보 기자

 

김자인(24)은 이화여대, 경인(20)은 서울대생이다. 둘 다 미대 조소과다. 경기도 가평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며 보습학원이나 과외 한 번 받아본 적 없이 대학에 갔다. 그런 자매가 자주 가는 곳이 한군데 있다.
 

자인이 백일(百日)날, 산에 미친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를 등에 업고 인수봉에 올랐다. 둘째 경인은 고등학교 때 로체와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다녀왔다. 두딸이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뒤를 잇겠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대(代)이을 딸을 둘이나 가진 아버지 청곡(淸谷)김시영(金時泳.52)은 도공(陶工)이다. 청자 못지 않게 화려한 흑유(黑釉)를 빚어내는 그가 말했다. “좋은 도자기는 대를 이어야 나오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해주니 기분 좋다.”
 

가평읍에서 태어난 김시영은 7살 때 서울로 유학갔다. 재일교포 출신 서예가 두남 이원영(2008년 작고) 집에 살며 학교를 다녔다. 이원영은 그에게 먹을 갈게 하며 인생 덕담(德談)을 들려줬다.
 

“아이야,넌 커서 예술가가 되거라...” 일본에 다녀올 때면 어김없이 이원영의 손에는 아이에게 줄 도구와 장비 보따리가 쥐여 있었다. “커서 장인(匠人)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래서 간 학교가 용산공고 금속과다.
 

1974년, 그곳엔 작은 용광로가 있었다. 거기서 불을 알게 됐다. 불 세례 받은 금속이 전혀 다른 질감과 소재로 환생하는 장면. “연금술사를 꿈꾸게 됐다”고 그가 말했다.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번은 철학책을 읽는데, 옆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며 막 떠드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내려놓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쳐버렸다.” 두꺼운 나무책상이 주먹 한 방에 박살이 나 버렸다.
 

김시영의 상상력은 또 다른 곳으로 튀었다. “모스크바올림픽에서 복싱 금메달을 따리라.” 가평에서 씨름으로 이름 날린 큰형을 비롯해 집안에는 장사가 가득했다. 낮에는 불과 책을 만났고 밤에는 샌드백을 두드렸다.
 

훗날 고교 은사 한 사람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문제아 하나가 고려 흑자를 재현했다.” 김시영은 연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갔다. 77학번 공학도의 목표는 연금술사였다.
 

그런데 그만 산(山)을 만나고 만 것이다. 3학년 때 산악회에 들어갔다. 완전히 미쳐버렸다. 산악회는 철저하게 입회 기수 중심이다. 군대다. 일찍 입회한 같은 학번들을 선배로 모시며 산을 다녔다.
 

홍옥주(洪玉珠)라는 홍일점 ‘전입 고참’은 동갑내기 김시영을 ‘빠따’로 두드려패며 산을 가르쳤다. 빠따는 사랑으로 이어졌고 둘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게 백일날 인수봉에 간 큰딸이다.
 

산은 그에게 도자기를 점지해줬다. 홍옥주와 산을 다니며 화전민 터를 지날 때, 그는 흑유 파편을 봤다. 어떻게 도자기가 까맣지? 궁금증은 커져갔다. 신소재 공학도의 호기심이 훗날 김시영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 국립공업연구소 도자기 연구원에 들어갔다. 세라믹연구가 목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칼 같은, 그런 첨단소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세라믹 회사 공장장도 했다. 여전히 꿈은 연금술사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천에서 만난 노(老) 도공들은 그에게 창작욕을 심어줬다. 도자기의 곡선, 흙과 유약과 불이 만드는 오묘한 색과 무늬, 질감이 그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흑유파편이 부활했다.
 

연세대 대학원 세라믹공학과에서 재료부터 연구했다. 낮에는 직장에 다녔고 밤에는 재료를 연구했다. 1990년 석사를 마치고 나서 1991년 아예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향에 가평요(加平窯)를 차렸다.
 

김시영이 말했다. “흑유는 불길의 성격에 따라 그 색과 무늬가 크게 달라진다. 요변(窯變)이라 하는데 유약과 흙이 화염 속에서 변성이 되면서 삼라만상이 창조된다. 그 맛 한번 보면 눈에 아무것도 뵈지 않는다.”
 

아버지는 흙에 미쳤지만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아내는 아버지 대신 아이들을 엄히 길렀다. 김시영은 10년간 불길과 흙을 ‘연구’했다. “데이터를 다 기록했다. 그릇을 어디에 넣으면 어떻게 되고 기타 등등.”
 

이후 10년은 창작이었다. 옛 선조들처럼 감(感)에 의존하는 작업과 사뭇 다르다. “공예도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쉽다. 그렇게 연구를 하면 나중엔 감(感)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숫자를 보지 않는다.
 

그가 만든 ‘검은색’은 무궁무진하고 오묘하다. 블랙홀처럼 주위를 빨아들이는 흑색, 세상 모든것을 내튕길 듯 빛나는 검은색, 불길이 닿은 곳에 요변이 생겨 그려진 매화, 설산(雪山),바다가 그 검은 우주 속에 있다.
 

시골에 은둔해 그릇을 만드는 가난한 도공을 1997년 천주교 춘천교구 장익 주교가 알아봤다. 주교는 정양모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도공을 소개했고, 그리하여 흑유 도공 청곡 김시영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후 콜렉터들이 대거 생겨나 작품들이 팔려나갔다. 2009년 일본미술구락부가 펴낸 ‘미술가명감(美術家名鑑)’에는 김시영의 말차다완(抹茶茶碗) 감정 기준가격이 97만엔이라고 적혀 있다. 작은 찻잔이 1000만원이다.
 

미술가명감은 일본 경매회사들이 기본적으로 참고하는 예술가들의 리스트다. 중국,한국,일본 3국에서 드물게 작업하는 흑유(黑釉)의 대가(大家) 열반에 그가 올랐다.
 

세월은 덧없다. 사내가 흙에 매진하는 사이에 아내는 11년 신장병을 앓다 2008년 4월 별이 됐다. 김시영이 말했다. “그가 그립다.” 그 해 김시영은 홍옥주를 그리는 작품전을 가졌다. 주제는 설산(雪山), 그녀를 만난 곳이다.
 

도공이 아내를 그리워하며 두 딸과 작품을 만든다. 딸들은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귀여운 딸처럼, 때로는 냉혹한 혹평을 던지는 동료 예술가로 아버지를 보듬는다. 김시영이 말했다.
 

“내가 흑유를 만든 게 아닌 거 같다. 흑유가 자생력이 있어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게 틀림없다. 10년이 됐다. 그런 느낌 드는 거.” 연금술사를 꿈꾸던 사내가 이제 대를 잇는 어린 후배들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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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on pottery of gapyeong kiln black glaze ceramic

Kim Syyoung

Lotte gallery 

1997

<Hope on Pottery of Gapyeong kiln Black glaze ceramic (‘Heukja’)>
Jeong YangMo_Former President of National Museum of Korea 

1997

Black color embraces all color. So it has implicative meaning and limitless curiosity and attraction. Black color does not try to say. However who says what, it is quite as much as tons of heavy rock and scarcely mature. What is meaning in it? It itself doesn’t say anything, though when and what to say does it keep billion years’ silence?
But black is a dark color and is not frequently used in our daily lives but use for particular purpose. So a person who uses black color seems like a spirit practicing monk who tried to understand deep meanings of it in silence, or like a person who is being captivated by its true attraction and trying to be a close friend of black color while communicating with it through silence.

 

The time that black color was used to pottery in this country would be B.C. 4~5 centuries at which black pottery was appeared. The Black glaze ceramic (=Heukja) would be used for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and after that hard pottery of gray blue and black color was developed while manufacturing pottery of reduction firing, and ‘Heukja’ was manufactured at celadon kinl at the end of Unified Silla dynasty, and from that time the ‘Heukja’ has been succeeded to Goryeo and Joseon dynasty. Like this the ‘Heukja’ is no more than a part in pottery history in this country, but it radiates unique attraction in its form and color formation of glaze. The balckware was already made at Yongsan period in China, and what related to our ‘Heukja’ has relationship to ‘Heukja’ unearthed with Mandolin Type Bronze Dagger which was appeared in Liaoning Province China. For the ceramic, the ‘Heukja’ was produced at celadon kiln located at East North of Zhejiang Province in the Later Han period and many kinls in South and North manufactured ‘Heukja’s, but famous ones among
them are those called as ‘Hanamcheonmok(天目)’ and ‘Jeongyocheonmok(天目)’, teacup of ‘BokgeonGeonyo’ (Bokgeon kinl) base etc, and most famous of them is the ‘Geonyocheonmok(天目)’ Light red color was used for repelling demon many times in China and Japan, it was also same in this country, but black color was used as a concept of demon repellent which control evils, and that may be one of reasons that ‘Heukja’ has been succeeded. Hanging charcoal on gate of a house in which new baby was born, or putting heated red charcoal into soy sauce in process of making it and hanging charcoal, or cleaning ceramic brazier and ceramic rice cooking pot as
much as it shines, or painting graphite on iron pot would be examples.

 

They say a person who is harmonize with black color is a fine dresser and confident with his/her appearance. CheongGok of Gapyeong kiln majored Metal engineering in university and had broad research on ceramic at graduated school and national institution, and actually he took a charge of factory of a ceramic manufacturing company. We could understand the reason that he who studied Metal engineering
took a way of manufacturing pottery, if we see that he opened “Cheongpyeong kiln” and “Gapyeong kiln” and started to manufacture ‘Heukja’.

 

All pottery has relationship with various metallic minerals mainly with iron, but particularly a kind of ceramic called “‘Heukja’ ,‘black ceramic’, ‘black glaze ceramic’, ‘cheonmok(天目) ” has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iron. If he understood metal and ceramic on scientific knowledge and manufacture pottery, his beginning is not normal. His practicing monk like approach on pottery, particularly only on ‘Heukja’ made us to have some expectation.
 

Meanwhile he has experimented ‘Heukja’ in many ways to give various changes on color, so surface of it looks like calm flowers blossomed on black mother earth. The basic form takes classical ones as main, but he tried to make modernistic transform
little by little.

 

The ‘Heukja’ must have deep taste. For that, selection of various clays is important I think it must be a mother earth which is like deep sea with moving lava but it is not erupt. And the change of glaze must be shine like a finishing stroke at various and gorgeous surface. Beauty of black color could vitalize its depth and beauty by bold contrast with white. And vitality of glaze could be more vivid because of unique form.

I think Kim Sy-young could carry out these work. It is because his broad knowledge, and academic and practicing attitude of working is beautiful.

<가평요 흑유자에 바라는 마음>
정양모_전 국립중앙박물관장

1997

 

 

검은색은 모든색을 포용한다. 그래서 함축적 의미를 지니며 무한한 호기심과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검은색은 말을 하려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그 입이 천근 바위보다 무거워 무서우리만치 의젓하다. 과연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 자신 말을 하지 아니하지만 언제 무슨 말을 하려고 억겁의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그러나 검은색은 음색으로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아니하고 특정한 용도에 사용된다. 그래서 검은색을 쓰는 사람은 그 깊은 뜻을 묵묵히 헤아려 보려 애쓰는 수도승 같기도 하고 그 진정한 매력에 사로잡혀 침묵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검은색과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어보려는 것 같다.

 

우리나라 도자기에 검은색을 사용한 것은 흑도를 사용하던 서기전 4~5세기경부터 일 것이다. 아마 이 때 흑도는 제례 시 사용하였을 것이며 그 후 환원 번조의 도기를 만들면서 회청흑색의 경질토기가 발전하였으며 통일신라 말경에 청자 가마에서 흑자를
만들었으며 고려조선까지 흑자가 연면히 이어 내려왔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의 흑자는 도자사상 한 부분에 지나지 아니하나 그 기형과 유약의 발색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중국에서는 이미 용산시대에서 흑도를 만들었으며 우리의 흑도와 관
련이 있는 것은 요령성에서 발견되는 비파형 청동검과 같이 출토되는 흑도와 연관이 있다. 자기로서는 후한 대에 절강성 동북쪽 청자가마에서 흑자를 생산하고 있으며 남북의 여러 가마에서 흑도를 생산하였지만 그 중 유명한 것은 하남천목이라 불리는
것과 정요흑자 복건건요의 천목 등이며 가장 유명한 것이 건요천목일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붉은 양색을 벽사에 많이 이용 하였는데 우리나라는 붉은 색도 썼지만 검은색은 잡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일종의 벽사개념으로도 사용하였으므로 흑자가 연면히 이어온 연유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아기를 난 집 문에 숯을 매단다든지 간장 담글 때 벌건 숯을 넣고 장독에 숯을 매단다든지 질화로와 질밥통을 검은 윤이 나게 매만지는 것 , 무쇠솥에 흑연을 바르는 것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흑색을 잘 소화해 내는 사람은 멋쟁이 이고 자기 외모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가평요의 청곡 김시영은 대학에서 금속학을 전공하고 그 후 대학원과 국립기관에서 도자기에 관한 폭넓은 연구를 하였으며 실제 도자기 회사 공장일을 책임지기도
하였다. 그 이후 “청평요” “가평요” 를 개설하고 흑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을 보면 금속공학도가 도자기에 발을 들여놓은 연유를 알만 하다. 모든 도자기가 철분을 위주로 여러 금속질 광물과 연관이 있지만 특히 “흑유자 흑유도 흑자 천목” 이라 불리 우는
유형의 도자기는 철분과 불과분의 깊은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속과 도자기를 과학적 토대위에서 깊이 이해하고 도자기를 만든다면 이미 그 출발이 범상치 아니하다. 도자기 중에서도 흑자만을 고집하고 있는 그의 수도승과 같은 접근이 그에게 어
떤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 동안에 그는 여러 가지로 흑유자를 실험하여 색상에 매우 다양한 변화를 주어 표면이 마치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꽃들과 같다. 바탕이 되는 기형은 고전적인 것을 주로 하면서 조금씩 현대적 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흑유는 깊은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태토의 선택이 중요하다. 깊은 바다 같고 용암이 저 밑에서 꿈틀거리지만 전혀 표출되지 않은 대지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또한 유약의 변화는 다양하면서도 화사한 면이 화룡점청 처럼 빛나야
한다.
흑색은 백색과의 대담한 대비로 그 깊이와 멋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독창적인 형태가 있으므로써 유약의 생명력이 더욱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김시영은 이러한 작업을 능히 해내리라고 생각한다.

 

그의 든든한 기초와 학구적이고 수도하는 자세로 정진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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